[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외줄인생

2021.09.30 06:00:00 13면

 

지난 27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외벽을 청소하던 29세의 일용직 노동자가 추락했다. 49층 꼭대기에서 내려가며 청소를 시작해 15층 높이에서 줄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에게 외벽청소는 그날이 첫 출근일이었다. 처음 외벽을 타는 노동자가 외줄에 의지한 채 49층 꼭대기에서 허공으로 몸을 밀어낼 때 어떤 마음일까?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지배했을 것이다. 두려움을 밀쳐내고 첫발을 내딛기까지 그의 어깨 위에는 여러 이유가 켜켜이 쌓여져 있었을 것이다. 매달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삶의 절박한 요구들이.. 신산한 일용직노동자의 삶에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보통사람은 내려다보기조차 살 떨리는 높이에서 그는 그렇게 매달렸고 짧았던 젊음을 마감했다. 우리는 한해 산재로 882명이 죽는 나라, 그중에 37%인 332명이 이처럼 작업 중 떨어져 세상을 떠나는 나라다(2020년 기준).

 

비슷한 또래의 90년생 청년 한 사람도 산재(?)를 당했다고 한다. 업무상 과부하로 어지럼증을 앓았다는데 회사는 6년 근무한 그에게 퇴직금(위로금?)으로 50억을 지불했다. 모두가 다 아는 곽상도 의원의 아들 곽병채 씨의 이야기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그 대가를 받았을 뿐, 어떤 특혜도 없다고 말한다. 월급 250만 원 받는 사람이 퇴직금 50억을 받으려면 2000년을 근무해야 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그가 다녔던 회사 화천대유를 두고 여야가 서로 누구꺼냐며 드잡이를 하고 있다. 게다가 윤석열 씨의 부친이 화천대유 관계자에게 주택을 매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일파만파 대선정국을 좌우할 키워드로 떠올랐다. 

 

항간에는 화천대유가 SK 최태원 일가가 실소유주이며 최순실을 통해 최태원을 사면해 줄 때 당시 민정수석이던 곽상도에게 이렇게 사례를 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지금 박영수 특검의 딸이 화천대유에 근무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단다. 팩트는, 최순실이 만든 미르, K스포츠에 SK가 111억을 내놓았지만 특검은 불기소 처분했다. 복잡한 사건이 얽히고설켜 이해하기 어지러울 때는 상황을 단순하게 봐야 한다. 단순하게 보는 것은 곧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고금의 상식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 공짜가 없기에 누구는 외벽에 매달렸고, 누구는 어지럼증으로 거액위로금을 받았다. 그렇게 외벽을 타는 노동자들의 노동을 바탕으로 아파트를 분양해 누구는 일확천금을 번다. 그 돈으로 위로도 하고 사례도 한다. 참 더러운 세상이다.

 

조금 시간을 거슬러 9월 8일에는 서울 구로구의 아파트 외벽청소를 하던 또 다른 20대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청년은 원래 하던 일이 코로나 때문에 못 하게 되자 군대 가기 전까지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 청년이 헬멧과 장비를 남기고 숨진 그 자리에 아파트주민들이 꽃과 편지를 놓았다. 쪽지에 한 아이가 이렇게 적었다. "딱 한 번만 더 (줄을) 묶을 순 없었을까요?.. 그곳에서는 제발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하나의 줄이 풀리면 그대로 추락하는 벼랑 끝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곽상도 의원의 아들 부류는 외줄이 아니라 그물망처럼 촘촘히 짜여져 서로 뒤를 봐주는 것 같다. 전직 검찰총장, 대법관, 특별검사, 재벌.. 등등.. “너거 아부지 머하시노?”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를 오징어게임의 말이라 한다. 천만에. 오징어게임의 말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당신은 무엇을 걸었길래..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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