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농부는 땅을 탓하지 않는다

2021.10.29 06:00:00 13면

 

1년가량 남은 퇴직을 앞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화두가 몇 년간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근근이 부어놓은 연금은 퇴직 후 아내와 생계비를 충당하기에도 벅차다. 늦게 본 아들딸은 아직 자립하지 못했다. 평생 시간만 나면 돈 안되는 일에 몰두하며 보낸터라 여유있는 노후는 언감생심, 마음 같아선 벌이를 계속하고 싶지만 늘그막에 정글로 뛰어든 선배들을 보니 버텨내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귀촌이었다. 

 

애초 귀촌을 생각한 이유는 솔직히 말년에 도시빈민의 삶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도시에 머무르면 이런저런 복잡한 시절 인연들에 돈 나갈 일만 첩첩인데 알량한 수입으로 팍팍한 살림 허리펴기는 진작에 가망없는 일, 최소한 텃밭이라도 일궈 생계비라도 줄이면 버는거나 다름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얼마 전 함양에 텃밭을 마련해 올해부터 매주 하루 이틀씩 머무르며 칡덩굴이 뒤덮고 있는 묵정밭을 개간하고, 농막을 짓고 농사일을 배우느라 하루해가 어떻게 뜨고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태생이 도시에서 나고자란 탓에 농사일은 일자무식이다. 그래도 한 번씩 마주치는 동네분들이 살갑게 가르침을 주셔서 이제 잡초와 작물 구분은 웬만큼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내 안의 노동본능을 일깨우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땀 흘리고 일 할 때는 잡념이 사라진다. 새삼 노동의 가치에 대해 눈을 뜬다. 누군가 농사를 짓고, 길을 닦고, 물건을 나르는 수고를 들이지 않는다면 세상은 단 하루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야권의 유력한 대통령후보라는 사람은 “사람이 손발로 노동해가지고 되는 건 하나도 없어. 그거는 이제 인도도 안 해. 아프리카나 하는 거..”라고 대놓고 비하한다. 생각의 천박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싼맛에 덮어놓고 덜컥 사들인 골짜기 텃밭 덕분에 새벽녘 교교한 달빛에 취해보기도 하고, 북두칠성을 보곤 반대편 카시오페이아를 찾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올해 이백주를 심은 고추농사는 탄저병을 몰랐던 탓에 겨우 모종값을 건진 정도이고, 김장 담을거라 야심차게 심은 배추랑 무는 이름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말라가고 있지만 그래도 들깨를 닷되 가량 수확해 몇몇 친지들에게 나눠줄 때의 성취감은 그 모든 실패를 덮고도 남음이 있다. 앞에 언급한 후보는 “사과는 개나 줘버려”식으로 했다지만 나는 “실패는 개나 줘버려”라고 말하고 싶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가훈이 ‘정직’이란 소리를 듣고 한참 웃은 적이 있었는데 사실 땅만큼 정직한 게 어디 있겠는가? 

 

농부는 땅을 탓하지 않는다. 나는 올해 병충해를 몰랐거나 심는 때를 놓쳐 실패한 작물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배우고 익혀야 하는 일이므로 내년에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그 숱한 실언들을 반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늘 “진의가 잘못 전달되었다, 왜곡됐다”고 변명만 해왔다. 앞서 사과파문의 해명도 모두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내가 보기에 윤 후보의 저런 태도는 필시 올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될 것이다. 우리 텃밭의 가새뽕나무를 걸고 내기해도 좋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안타까운 것이, 우리는 언제쯤 대선후보의 자질논란이 아닌 정책내용을 두고 범국민적 토론을 할 수 있을까? 답답한 노릇이다.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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