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강화의병 30명 발굴

2022.02.06 11:23:51 15면

 지난해 10월 13일부터 강화의병 발굴에 나섰던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강화의병 30명을 발굴, 최근 강화군청에서 보고회를 열었다.

 

6일 인천대에 따르면 이번에 발굴된 일제침략기 강화의병은 강화 출신 25명과 강화도 및 인근 도서지방에서 일본 군경과 의병투쟁을 벌였던 타지 출신 5명이다.

 

정부가 의병 공적으로 포상을 시작한 1962년 이래 지금까지 강화 출신은 8명에 불과했다. 3배가 넘는 의병 유공자를 발굴한데다 이번 보고서에는 포상된 강화의병의 공적까지 정리해 소책자를 제작, 강화의병의 진면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이날 발굴·보고된 의병장과 의병은 김용기(金龍基)·이능권(李能權)·지홍윤(池弘允) 의병장이 이끌었던 의진(義陣 의병부대) 소속의 의병장과 의병이 대부분이다. 강화의병은 뭍에서는 이능권 의진, 바다에서는 김용기·지홍윤 의진이 각각 투쟁을 펼쳤다.

 

이능권 의병장은 강화 출신으로 광무황제의 밀명을 받들어 헤이그특사 이준(李儁) 일행을 호위해 남대문역에서 열차를 이용, 부산을 거쳐 러시아로 향하는 여객선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지만 결국 이준 특사가 자결하고, 광무황제가 강제 퇴위당했다는 소식에 의병을 일으킨 인물이다.

 

황해도 배천 출신 김용기 의병장은 시위대 기병 부교(副校)로 근무 중 군대가 해산되자 광무황제의 밀지를 받고 거의한 박정빈(朴正彬) 의진에서 창의돌격대 총대장으로 경기도와 황해도 일원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1908년 4월부터 10월까지 강화·교동과 인근 도서지방에서 활약했다.

 

지홍윤 의병장은 강화 출신으로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당하자 의병을 일으켜 강화 17면, 신도·시도·장봉도·주문도·아비도·망도·말도 등 도서지방과 황해도 평산·배천·연안군에 이르기까지 김용기 의병장과 맹위를 떨쳤다.

 

일제는 강화의병 진압을 위해 러일전쟁 때 통보함(通報艦)으로 활약했던 군함 등을 동원해 강화도와 인근 도서지방을 왕래하는 의병들의 나룻배나 어선을 공격했고 뭍에는 육전대까지 파견, 약 6개월 동안 의병 진압에 나섰다.

 

이들 의병장 의진에서 활약했지만 아직 포상되지 못한 대표적인 분은 김용기 의진의 고재환·김장석, 이능권 의진의 김추옥·여만복·유성준·이호춘, 지홍윤 의진의 고부성·김신명·장동섭 등이다.

또 발굴과정에서 강화군 하도면 주윤창, 내가면 배영도 집에 의병이 금품을 강탈해 갔다고 인천경찰서장이 내부 경무국장에게 보고한 문서도 발견됐다. 이는 주로 이능권 의진이 총기 구입을 위해 강화군 재력가들에게 금품을 요청하고 재력가는 금품을 마련했다가 이를 제공한 것인데, 일본 군경에 이 사실이 발각되면 이른바 폭도 협력자라 해 엄청난 고초와 처벌이 따랐기 때문에 의병들이 요청한 금품을 가지고 갈 때 재력가를 새끼줄로 묶고 폭행을 가해 마치 강탈해 가는 형국을 만든 것이었다.

 

이태룡 인천대 독립운동연구소장은 “강화의병뿐만 아니라 3·1독립만세의거, 국내·외 반일투쟁의 선두에 섰던 강화 출신 독립유공자들의 공적을 기리고, 그것을 하나의 책자로 묶어내면 ‘강화독립운동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인천 = 정민교 기자 ]

정민교 기자 jmk258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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