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로 대서사 시작한 '파친코'…재일조선인 4대 이야기

2022.03.26 09:54:24

애플TV+ 두번째 한국 시리즈…선자 시선으로 1910∼1980년대 교차 연출
윤여정은 물론 신예 김민하·진하 눈길…8부작에 녹여낸 파란만장한 민족사

 

고난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의연함과 이를 헤쳐나가는 강인함을 지닌 선자, 그가 그렇게 지켜낸 가족의 이야기가 강한 울림을 전한다.

 

한국 론칭 전부터 윤여정·이민호 출연으로 기대를 모은 애플TV+ 시리즈 '파친코'가 25일 베일을 벗었다. 이선균 주연 '닥터 브레인'에 이어 애플TV+가 내놓은 두 번째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다.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191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파란만장했던 우리 민족사를 들여다본다.

 

드라마는 4대에 걸친 가족사를 주로 선자의 시선에서 여러 시대를 오가며 풀어낸다.

 

이날 공개된 1∼3회는 부산 영도에서 일제강점기라는 가혹한 세상을 살아가는 어린 선자와 부모님의 이야기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젊은 선자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린다.

 

1915년 허름한 하숙집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선자의 부모는 가난하지만 딸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는 선한 인물들이다.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 딸을 지켜내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은 훗날 선자에게 강력한 유산이 된다.

 

그로부터 9년 후 훌쩍 자란 선자는 부유한 상인 한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한수의 아이를 갖게 된 후 그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절망에 빠진다.

 

젊은 선자의 이야기 중간에는 1989년 오사카에 사는 74세의 선자를 연기한 윤여정의 모습도 나온다. 늙은 선자는 일본의 가정집에서 김치를 썰어 밥상을 차려내고, 손자의 부탁으로 찾아간 어느 한국인 집에서 맛본 흰 쌀밥에 눈물을 흘린다. 그동안 선자가 겪었을 고통의 시간을 짐작게 하는 장면이다.

 

눈여겨볼 인물이 또 한 명 있다. 1989년 화려함으로 가득한 뉴욕에서 야망 넘치는 은행원으로 사는 선자의 손자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부모 세대, 조부모 세대, 그리고 그 이전 조상들이 겪은 고난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인물이다. 영어와 일본어는 능숙하지만, 한국말은 어색한 그의 언어 실력은 재일조선인의 후세대가 겪은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800쪽 분량의 원작 소설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시대 상황을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작은 사건이나, 지나가는 대사 한마디에 녹여낸 영리한 연출이 돋보인다.

 

일제강점기의 공포를 직접 겪은 젊은 선자가 지도에서 일본을 보고 "지도로 보니 겁낼 필요 없겠네요"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기분이 안 내킬 땐 그냥 일본인이라고 해요"라고 말하는 솔로몬의 대사는 마음 한곳을 저리게 만든다.

 

어린 선자와 젊은 선자, 늙은 선자를 중심으로 1910년대와 1930년대, 1980년대를 완벽하게 구현해낸 소품과 의상, 세트장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시대 배경의 잦은 전환과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언어가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 이야기 흐름을 단절시키는 면이 있지만, 드라마가 4대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 집중하면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

 

방대한 이야기를 요약해 다루다 보니 선자와 한수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 등 인물 간의 관계가 급작스럽게 진전되는 느낌이 있지만, 배우들의 훌륭한 감정 연기는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충분하다.

 

특히 젊은 선자와 솔로몬을 각각 연기한 신인 김민하와 진하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김민하는 극적인 서사를 차분한 분위기로 소화하며 감정에 대한 해석을 오롯이 시청자에게 맡긴다. 진하 역시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인 솔로몬을 과하지 않게 담담하게 표현해냈다.

 

다음 주 금요일부터 한 에피소드씩 공개되는 4회부터는 일본으로 건너간 선자와 그의 가족들을 통해 '조센징', '자이니치'로 불리며 일본인들의 멸시와 차별을 견뎌내야 했던 재일조선인의 삶이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우리의 이야기지만, 타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이유로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서사는 세계 곳곳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이민 가족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ccbbk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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