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정도전이 틀렸다(?)

2022.04.06 06:00:00 13면

 

 

 

조선 건국에 깊이 관여한 무학대사와 삼봉 정도전이 궁궐의 좌향을 놓고 치열하게 맞섰다는 역사는 유명한 얘기이지요. 무학은 “인왕산(仁旺山)을 주산으로 유좌묘향(酉坐卯向)이나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대궐을 지어야 한다”고 한 반면에 삼봉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임좌병향(壬坐丙向-정남에서 동쪽으로 약 15도 틀어진 방향)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니까 무학은 인왕산을 뒷산, 낙산을 앞산, 북악산을 좌청룡, 남산을 우백호로 삼자 한 것이고 삼봉은 북악산을 뒷산, 남산을 앞산,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는 뜻이에요.

 

이 대결은 결국 왕실이 ‘도선비기’와 같은 주장을 한 정도전의 견해를 받아들임으로써 종지부를 찍었어요. 그래서 조선의 대궐은 임좌병향으로 지어지게 된 거예요. 하지만 그 이후로도 풍수학적인 논쟁은 끊임없이 일어났지요. 지금의 경복궁은 자좌오향(子坐午向=정북 방향을 등지고 정남향을 바라보는 방향)을 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이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바뀌지 않았나 추정되지요. 만약 경복궁의 좌향이 원래대로 임좌병향으로 유지됐다면 조선은 그렇게 허망하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지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단 하루도 근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일로 정국이 시끌벅적하네요. 청와대 자리는 원래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 관저였는데, 옛 중앙청과 함께 조선의 기(氣)와 용맥(龍脈)을 끊기 위해서 지은 건축물이라는 말이 있어요. 1927년 총독 관저를 처음 지은 사이토 마코토 제3대 조선 총독이 나중에 일본 총리에 올랐다가 1936년 2·26 사건으로 젊은 장교들에 의해 살해당한 비극을 연결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풍수와 역술은 불가신불가폐(不可信 不可廢=믿을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다)’라고들 해요.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를 떠나려고 한 데는 필경 풍수설 영향도 있을 거예요. 윤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 문제를 너무 성급하게 다룬다는 비판이 일고 있어요.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렇게 단칼에 하지 않으면 끝내 못 할 것”이라는 동조 논리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이전에 실패했던 지난 기록들을 고려하면 아주 그른 말은 또 아닌 듯해요.

 

그러나 이거 하나는 분명하게 하고 가자고요.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단지 국가 지도자 한 개인의 행·불행과 연결 짓는 바보짓에 더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으로만 접근하는 게 맞아요. 구중궁궐 안에 갇혀서 민심과 동떨어진 채 누리기만 하는 제왕적 대통령 시대를 청산하고 불통의 악순환을 끊어내어 열린 통치구조를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혁신’의 계기로 삼는 게 바른길이에요. 세계사 속에서 조선왕조 500년은 절대로 짧은 세월이 아니었기에, 그때 정도전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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