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훈의 대청단상- 700년 전 유배지로서 대청도

2022.04.25 08:28:17 14면

 대청도는 국가 지질공원의 명소가 있는 유명한 섬으로, 방문객의 감탄과 탄성을 자아낸다. 유배지로서 언급을 하자니 왠지 격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서풍받이처럼 보는 시각에 따라 깍아지른 듯한 경관이 인간의 접근을 막는 고립된 지형을 만들면서 유배지로서 안성맞춤이었을지 모르겠다.

 

‘유배(流配)’는 고려, 조선시대 5가지 형벌 제도 중 가장 무거운 사형 밑에 해당하며 속칭 ‘귀양’이라 한다. 중한 죄를 범했을 때 차마 사형에는 처하지 못하고 먼 곳으로 보내 죽을 때까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

 

국내 범죄자의 경우 대청군도는 주로 백령도가 유배지로 이용됐으며, 대청도는 2회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외자의 경우 이와 반대인데 외국인 유배지로서 대청도에는 어느 나라 사람이 언제 왔는지 소개한다.

 

 ▶대청도에 유배 보낸 나라와 사람들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역사 문헌에 의하면 백령, 대청, 옹진군 도서 지역에 외국인의 유배 관련 내용이 있는데 유배인의 숫자나 빈도로 보아 대청도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그 중 가장 많이 유배를 보낸 나라는 원(元)이며, 인원수는 순제를 포함해 7명에 달한다.

 

기록상 다른 도서 지역이 1~2명임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며 그것도 특정 시기인 1280년(충렬왕6)부터 1331년(충혜왕1)까지 약 50년 간 집중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유배 온 사람은 세조 쿠빌라이(징기스칸의 손자)의 8째 아들인 애아적(愛牙赤, 유배 기간 1280~1281)을 비롯해 1283년(충렬왕9)에 유배되었으나 내용을 알 수 없는 실나지(室刺只), 종친 내부의 반란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288년(충렬왕14)에 유배 온 활활알(闊闊歹) 등이다

 

또 몽골 내부 반란군의 일족으로 간주돼 1292년(충렬왕18) 귀양 온 도길출(闍吉出), 세조의 손자이며 그의 두 동생이 황제(武宗과 仁宗)였고, ‘위왕(魏王)’이라 불리는 황제의 형(皇兄)의 신분이던 아목가(阿木哥)는 본래 제주로 유배됐으나 1317년(충숙왕4)에 대청도로 옮겼다.

 

이것은 원 황실의 내분을 알려주는 단적인 사례인데, 그는 다시 대청도에서 개경으로 처소를 옮겼고, ‘위왕관(魏王館)’이라는 저택을 제공받기도 했다. 또 ‘고려사’에 ‘태자’로 기록된 발라(孛刺), 그 역시 역모에 연루된 죄목으로 유배 조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유배 시기는 1324년(충숙왕11)이다.

 

그리고 마지막 황제로 등극한 순제. 이처럼 대청도에 유배된 사람들은 대부분 원 황실의 일족으로 국가적 사범이거나 황실의 분규로 격리 유폐시켜야 할 중요한 인물이었다.

 

▶유배지로서 대청도를 선호했던 이유는

‘유목민족’, ‘게르(ger)’, ‘초원’으로 대표되는 몽골 제국! 13~14세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3대륙을 지배, 호령했던 대제국이었다. 기마를 통한 발빠른 외적 팽창과 몽골제일주의에 입각한 지배구조가 체제 안정화에 기여했지만 정작 내부 황실의 안정은 요원했다.

 

넓은 대제국을 운영하는데 역참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제도를 활용한 몽골의 유배지는 부마국으로서 최변방이었던 고려를 비롯해 미얀마, 캄보디아, 티벳 등 광범위했다.

 

그 중 작은 섬, 대청도가 유배지로 선택된 주된 이유는 첫째 육로보다 수로를 이용한 이동의 편리함, 둘째 비옥한 토양과 해산물 등 풍부한 식량 자원, 셋째 당시 고려 수도였던 개경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제주에서 압록까지 섬에 설치한 13개의 수역(水驛)의 하나로서 수도 개경을 향하는 관문 역할, 넷째, 개경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는 지리적 이점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 김석훈 백령중고 교감·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김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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