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삼국지라고 하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우리 (생활)문화 특히 언어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4자성어라고도 부르는 고사성어의 주요한 요람이다. 演義는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뜻이다. 원나라의 나관중이 역사를 토대로 지었다.
부정적인 영향도 많다. 최근 정치동네 말잔치에 나온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사례 중 하나다. 우선 말뜻부터 풀어보자.
三顧草廬의 顧는 ‘방문하다’의 뜻. 3은 하나 둘 다음, 셋 말고도 ‘많다’는 뜻이니 여러 번 찾아가 뭔가 청한 것이 ‘三顧’다. 草廬는 우리말로 초가집이다. ‘고대광실 기와집’과 대칭되는, 청렴하게 사는 가난한 사람의 집이다.
보도를 토대로 상황을 그려보자. 유비 현덕이 아우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제갈공명의 사립문 앞을 세 차례 찾아와 경세(經世)의 지혜를 청했다. 장제원 비서실장이 ‘한덕수 (국무총리) 지명자를 삼고초려 한 끝에 그가 수락했다.’고 했다.
장제원과 유비가 동급으로 비유의 대상일세. 인군(仁君) 즉 윤 당선자는 제쳐놓았군. 옛 소설 같으면 ‘역모(逆謀)의 싹’일세.
장제원의 현대판 와룡선생(공명)이 사는 ‘초가집’은 어떤 모습이지? 그의 ‘터전’ 김앤장과 수십억(훨씬 더 되는 듯도 싶다) 부동산, 뛰어난 치부(致富)의 기록이 초려와 잘 비교되는구려.
공명은 40세 전후에 승상이 된다. 삼고초려에 응한 것은 훨씬 전이었다. 장제원의 공명, 한덕수의 나이는? ‘건강 자신 있다.’ 스스로 말했다니 뛰어난 인재임에는 틀림없으리. 싸구려 티 물씬한 ‘부덕의 소치’ 느끼게 하는구려. ‘어른’의 노익장은 당연히 현덕(玄德)하겠지만.
비유(比喩)는 비교가 가능할 때 의미가 산다. 깜냥도 안 되는 양자(兩者)를 나란히 놓고 이런 말잔치는 어불성설이다. 물론 장제원이 유비보다는 한참 윗길이고, 한덕수가 제갈공명보다는 몇 수 위 경세가일 터이지만 이 ‘장제원의 삼고초려’는 어색하다. 괜히 문자 썼다 싶겠다.
기계적이고 상투적인, 피상적이고 습관적인 무지의 언어가 범람하는 현장이다. 삼국지 고사성어가 우리 언어생활에 끼치는 (악)영향일 터다. ‘능력 뛰어난 분을 어렵게 모셨다.’는 걸 과장하는 수법으로서의 삼고초려, 그 복합성을 알았다면 사기, 몰랐다면 치매리라.
한자가 생활이나 공부에서 사라진 다음의 세상 풍경이기도 하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그 문자 속 헤매는 건 여간 큰 모험이 아니다. 장제원과 측근들의 유식하고 적절한 인용에는 감탄하는 바이지만, 세상의 무식함을 너무 모욕한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번드레한 말,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 언어를 대할 때 기시감(旣視感 데자뷔)을 너무 신뢰하지 말 것. 믿을 건 다만 사전뿐.
소위 ‘공인(公人)’의 말은 세상에 교과서처럼 작용한다. 사람들이 따라한다. 말 제대로 모르는 이는 입 닫으라. 아이들 볼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