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가뭄을 이기는 법

2022.06.07 06:00:00 13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남 함양의 산골에 작은 텃밭을 마련하고 매 주말이면 흙과 씨름한지도 1년이 지났다. 농사라곤 제대로 지어본 적 없는 어중개비가 산촌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기실 부실한 노후준비 탓이 컸다. ‘도시빈민은 있어도 농촌빈민은 없다’는 역설은 제쳐두고라도 퇴직 후 도시생활은 도무지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골짜기를 선택한 것도 그나마 땅값이 헐했기 때문이다. 농막 하나 겨우 지어놓고 농사 흉내만 내던 지난 1년, ‘개도 텃세한다’며 걱정하던 원주민들의 텃세는 웬걸 이장님과 동네 분들이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안달인지라 박복한 내게 웬 홍복인가 싶었다. 어쭙잖게 친환경으로 텃밭농사 지어볼 거라 낑낑대다 심는 작물마다 벌레밥을 만들어 보는 동네사람들마다 혀를 차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올해는 작년의 경험을 밑천으로 동네 어르신들에게 덜 부끄러운 밭을 만들어 볼 거라 이른 봄부터 팔을 걷어붙였다. 퇴비랑 석회고토를 뿌리고 밭을 갈며 나름 바빴다. 그런데 맙소사! 겨울부터 눈이 뜸하더니 봄이 되자 비라곤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동네 어르신마다 살면서 이런 지독한 봄 가뭄은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할 정도이다. 하늘을 이기는 농사는 없는 법, 씨를 뿌려도 싹이 나오지 않고, 정식한 모종들은 시름시름 말라갔다. 가뭄 앞에는 원주민들도 별 수가 없었다. 앞으로 당분간 큰 비 소식은 없다니 모두 힘을 모아 물길을 찾아 관정을 판다고 분주할 뿐이다.

 

대선과 지선, 큰 선거가 모두 지났다.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두렁 같은 더불어민주당은 선거가 끝나자 말자 말 그대로 아전인수(我田引水), 서로들 ‘제 논에 먼저 물 대느라’ 아우성이다. 대선 전부터 민주당의 자중지란은 정해진 루틴이 있다. 후보로 선택받지 못한 진영 측에서 끊임없이 자당의 후보를 공격하고 깎아내리는 것이다. 대선이 끝나고도 마찬가지다. 대선에 졌으니 후보가 책임져야 하고, 민주당은 반성하고 쇄신해야 한단다. 그런데 그 반성과 쇄신의 내용은 결국 대선후보를 씹는 것뿐이 아니던가? 대선 후 당장 코앞에 닥친 지방선거를 어떻게 하면 힘있게 치를 것인가는 관심이 없고 그저 반성이 먼저라고 어깃장을 놓았다. 등교만 하면 반성문만 쓰고 있는 놈을 누가 반장으로 뽑아줄 것인지는 논외로 하고.

 

대선 직후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야당 입장에서는 극심한 봄가뭄에 모내기를 해야하는 상황과 같다. 어떻게 하더라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듯 상대가 똥볼을 차대고 뻘짓을 해주면 좋으련만 외려 똥볼은 내부총질 전문 민주당의 특기 아니던가? 협심해서 개울을 파고 관정을 뚫는 노력은커녕 물꼬 싸움에 날 새다 모내기를 망쳤다. 그 결과 이젠 마을 공동체가 거덜이 나 서로 원수가 된 꼴이다. 자당의 패배를 기다렸다는 듯이 “꼼수, 사욕, 자기방어, 자생 당사” 등 날서린 말들을 쏟아내며 다시 물꼬 싸움을 끝장 내보자 한다. 결국 속내는 모심기보다 이장 자리가 더 탐이 난다는 것일 터인데, 문제는 이런 사람에게 이장 자리 양보한다고 마을공동체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뭄은 뒷전이고 제 논의 물만 챙기려 했던 사람이 이장이 되면 두고두고 영농자금이나 지원사업 빼먹느라 겨를이 없을게 뻔하다.

 

22대 총선이 2년도 남지 않았다. 그전에 현 거대야당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검찰발, 용산발 정계개편 시도가 끊이지 않을 것이며 이합집산이 빈번할 것이다. 사람은 위기에 닥쳐야 진면목이 드러나는 법이다. 누가 가뭄에 공동체를 위해 희생했는가가 마을일꾼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누가 대선과 지선의 벅찬 싸움에서 몸이 부서져라 싸웠던가가 야당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모내기든 정치든 가뭄을 이겨낸다.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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