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의 심우도]  철학용어 ‘지양’의 정체

2022.07.04 06:00:00 13면

 

옥주현 사태로 헤겔의 변증법을 깨치다.

 

옥주현이 등장하는 뮤지컬 동네 논쟁에 ‘지양’이라는 말이 고개 들었다. 어떤 문제의 시비를 가리는 도구로 쓰인 이 말,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 ‘샤워기 물 낭비 사태’였다. 옥주현은 공연 날 ... 수증기가 목 관리를 위한 것으로 ... 배우와 관계자들이 ‘물이 낭비되니 지양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물을 쉬지 않고 튼다고...

 

- ‘모든 허위 사실 작성, 유통 등에 대하여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며 ‘당사 및 배우와 관련해 추측성 보도는 지양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하지 말아달라.’는 뜻으로 그 단어를 썼다. 다른 기사지만 느낌이나 어색한(서툰) 어휘 전개가 흡사하다. 의도가 불결한, 낚시성 기사로 의심된다.

 

여러 매체가 약속이나 한 듯 이 기사를 실은 걸 보니 ‘대박’을 기대한 어떤 세력의 작전 아닌가 생각도 든다. 요즘 기자, 언론사들은 참 여러 가지 한다. 독자의 신뢰는 망가지겠고.

 

한자로 止揚이다. 止는 ‘멈추다’ 揚은 ‘오르다’의 뜻. 옳고 그름 시비(是非)처럼 ‘하지 말자’는 止와 ‘하자’는 揚의 서로 어긋나는 속뜻 단어가 함께 붙었다.

 

한자는 하나하나가 한 단어다. 한 글자만 써도 되고, 몇 개를 붙여 새 뜻을 만들 수도 있다. 원래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쓰던 말이 아니었다. 명치유신(1867년) 이후 구미(歐美)의 문물(文物)을 받아들이는데 온 힘을 쏟은 왜(倭 일본)가 헤겔 변증법을 번역하며 만든 ‘용어’였다.

 

유럽과 미국의 선진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왜는 구미에 굴종적이었던 것과는 딴판으로 이웃국가를 침략한다. 왜가 번역한 (한자로 된) 용어들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쓰이데 된 계기다.

 

정반합(正反合)으로 기억되는 헤겔 변증법의 한 해설에서 이 용어의 의미를 보자.

- 아우프헤벤(Aufheben)은 '폐기함'과 동시에 '보존하는' 것이다. 이는 헤겔 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다.

 

- 헤겔은 이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를 활용해, (변증법상에서) 낡은 질(質)이 부정되고 새로운 질로 옮겨 갈 때 낡은 질에 있던 것이 모두 부정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고 그 안의 적극적인 것은 새로운 질의 내부에 보존된다는 식으로 논리를 구성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독일어 단어 ‘아우프헤벤’을 헤겔은 ‘이러저러한 의미’의 변증법 (철학)용어로 채택했고, 일본이 이를 止揚이라 번역한 것을 우리가 쓰게 됐다. 이런 머리 아픈, 어려운 말을 어쩌다 ‘옥주현 사태’의 홍보팀이 ‘하지 말아달라.’는 뜻의 ‘좀 있어 보이는 말’로 쓴 것일까?

 

개 발에 편자, 상상해보자. 편자는 말굽에 대는 쇳조각이다. 이 편자처럼 ‘지양’이란 말, 뜻도 모르며 의미도 망가진 채 쓰는 이들이 꽤 있다. ‘옥주현과 개 발의 편자 언어’ 쯤으로 기억될, 요즘 말 ‘황당 시츄에이션’이다.

 

지양, 그 말 안 쓰는 게 낫다. ‘하지 말자.’면 너무 충분하다.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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