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백마탄 여장군’ 김명시를 기억하며

2022.08.29 06:00:00 29면

 

사람들은 ‘조선의 잔다르크’라 불렀다. 45년 12월,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김무정 장군과 함께 조선의용군을 이끌고 종로거리로 행군해 들어오던 날 ‘백마탄 여장군’이 왔다며 환영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후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를 뺀 모든 사람들이 통일된 나라를 만드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설파하던 장군은 48년 10월, 해방된 조국의 부평경찰서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조선의용군 지휘관 김명시의 이야기다. 

 

1907년 마산에서 태어난 김명시 장군은 일찍이 오빠 김형선의 영향으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모스크바유학을 마치고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해 1930년 하얼빈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면서 본격적인 무장투쟁의 길에 들어선 장군은 1932년 국내잠입 활동 중 일경에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의 옥고를 치렀다. 이때 오빠 김형선은 서대문형무소, 동생 김형윤은 부산형무소로 삼남매가 모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장군은 즉시 중국으로 탈출하여 해방될 때까지 휘하에 2000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싸웠다. 해방 이후 46년 3월 시인 노천명이 김명시 장군을 인터뷰하고 서울신문에 “김명시 여장군의 반생기(半生記)”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다. 

 

“..해외 풍상 20년, 그의 청춘과 정열은 오로지 원수 일본을 무찌르고 조국의 광복을 가져오는데 이바지하였다. 그동안 얼마나 고국이 그리웠으랴. 내 땅 내 조국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땅을 몰래 다니듯이 바람같이 드나들다 불운하여 일본의 주구들에게 잡히면 차디찬 감방에 몇해씩 내던져지고 철문을 채우는 것이 조국에 들어오면 받는 대접이었다. 그러나 일구월심(日久月深) 어떻게 조국을 잊을 수가 있으랴.  달 밝은 밤, 별 쏟아지는 새벽 조국의 태극기를 부둥켜안고 동지들끼리 엉키어 운적이 그 몇 번이었던가? 오늘 해방이 되어 떳떳이 내 땅에 발을 들여놓게 되니 감격의 눈물이 하염없을 뿐이다..(서일범 페북 인용)”

 

올해 8·15광복절에 며칠 앞서 비로소 김명시 장군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어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해방 77년 만이다. 막상 훈장을 전하려니 가까운 형제나 피붙이들은 진작에 유명을 달리했고 여동생의 양아들만 겨우 수소문할 수 있었다. 온 집안이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태우고 재만 남은 셈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고 했던가? 창원에선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서훈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70여개 제작해 시내 전역에 내걸었다. 알려내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 사라지면 역사가 없고 미래도 없다. 

 

오늘 8월 29일은 일제에 강제병합된 경술국치일이다. 얼마 전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33번의 자유를 부르짓으며 독립운동도 자유를 위한 열정이었고 지금 일본도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웃이라 규정했다. 반면, 관계개선을 위해 일본이 보여야할 할 성의, 즉 종군위완부 문제 같은 과거사청산과 수출규제 철회 등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대통령이 외친 자유는 과연 누구를 위한 자유일까? 일본에 오매불망 관계개선 신호를 보내는 대한민국 정부를 맞아 일본은 해상자위대창설 70주년 기념 국제관함식에 한국을 초대했다. 정부는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한단다. 기시다총리 뒤에 펄럭이는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상징 욱일기를 향해 대한민국 해군이 거수경례를 하는 상황이 벌어질 판이다. 관계개선에만 목을 매달아 함부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치욕이다. 또 하나의 국치일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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