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의 심우도] 주검의 ‘계급’

2022.09.19 06:00:00 13면

 

 

세기의 장례, ‘유해’는 뭐고 ‘운구’는 또 뭐지?

 

... 여왕의 유해를 운구차로 옮기는 것은 밸모럴 영지의 사냥터지기들이 맡았다. (뉴시스)

... 여왕 유해 보러 2만 명 밤샘, 조문에 최대 35시간 줄 (국민일보)

... BBC에 따르면 이날 오전 여왕의 운구를 영구차에 실으며 장례가 시작된다. (이데일리)

언론의 기사다. ‘여왕의 遺骸(유해)’는 금방 사망한 주검이 아니다. 추려진 뼈도 크게 보아 주검이라고? 억지다. 유해는 ‘남은 뼈’ 유골(遺骨)이다. 骸(해)의 뼈 골(骨)자를 보라. 다 안 적어서 그렇지,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유해’들이 언론에 떴다. 뉴스1 조선일보 중앙일보...

 

‘여왕의 운구’를 영구차에 싣는다고 했다. 운구가 뭘까? 높은 사람 주검의 이름일까? 아마 ‘시체 넣은 관(棺·柩)의 운반’을 뜻하는 운구(運柩)를 그렇게 쓴 것으로 보인다. ‘주검=운구’가 된 것이다. 맞나? 틀렸다.

 

개념어(槪念語)의 활용, 서툴거나 어색한 것 까지는 ‘새로운 언어적 시도’라고 짐짓 못 본체 한다고 치자. 그러나 잘못된 단어가 공공(公共)의 위치에 놓이면 곤란하다. 사람들이 보고 배운다. 기우(杞憂)일까?

 

언론 종사자들이 BBC를 인용할 정도로 영어는 잘 하면서, 우리 말글 실력은 그런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은 점도 걱정이다.

 

점점 언론인을 포함한 우리 지식인들의 (한국어) 어휘(語彙)가 빈약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을 지켜보고 있다. 외국어 공부도 바탕인 한국어가 튼실해야 잘 한다. 상식이다.

 

언론의 언어는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 말글의 ‘약속으로서의 뜻’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언어의 작은 차이 또는 잘못이 큰 피해를 부를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우고는 금방 잊었을까? 구두점만 잘못 찍어도 전체의 뜻 달라진다, 따위 사례를 다시 기억해내자.

 

죽은 몸이 주검이고 송장이다. 천한 말 같아서일까, 송장은 저런 장례의 용어로 잘 쓰지 않는다. 둘 다 우리말이다. 다행히 주검은 그런 편견 없어 자연스럽게 쓰이는 듯하다.

 

한자말도 시체(屍體) 사체(死體) 등은 느낌이 ‘별로’여서인지, 이번 세기의 장례 기사에서는 좀 꺼리는 것 같다. 시신(屍身)은 좀 나은가?

 

우리 생활문화에서 장례(葬禮)는 기피 또는 휘(諱 꺼림)의 대상인 듯하다. 공동묘지가 유명 관광지인 유럽의 경우와 비교된다. 우리는 ‘죽음’을 잊고 사는 것인가? 미워하나? 생(生)과 사(死), 생명현상의 (동전의) 앞면과 뒷면 아닌가.

 

죽음의 이름들이 낯설고 유장(悠長)한 느낌을 주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다. 종교의 죽음의 이름들은 상징적으로 더 경건하다. 왜 그래야 하느냐 물을 필요는 없다. ‘메멘토 모리’와 같은 뜻,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로 삼으면 의미 있으리. 인생의 깊이일 터.

 

그러나 언론 등 공공의 언어는, 지킬 건 지켜야 한다.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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