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로운 열매로 가득한 10월, 개천절을 보내며 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려도 차마 범하지 못한 곳이라는 이육사의 시 ‘광야’를 읽는다. 하늘이 처음 열리고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 천고(千古)의 뒤에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에게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는 광야를 상상한다. 최초의 민족국가 단군이 있었고 컴퓨터에 한글을 쓰는 오늘날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
남쪽에서 하늘이 열린 10월 3일을 개천절로 기념한다. 북쪽에서는 단군신화를 인정하지 않다가 1980년대부터 관심을 가지었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단군릉을 1994년 개건하면서 실존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핵문제로 준전시상태까지 갔던 불안한 시기를 감안하면 진위여부를 떠나 국가존립에 민족을 내세운 정치의 연속이다.
남쪽에서 한글날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세종 28년(1446년)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10월 9일로 기념한다. 북쪽은 훈민정음 창제된 날인 세종 25년(1443년) 음력 12월을 양력으로 환산해 1월 15일 훈민정음 창제일로 정했다. 남북은 단군을 민족국가의 시조로 인정하고 한글을 사용하면서 선조의 업적을 기리고 있지만 인식에는 차이가 있다.
임산부의 날인 10월 10일 북쪽은 ‘조선로동당창건일’이다. 이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성대하게 치른다. ‘조선로동당’은 헌법에 명시할 정도로 국가를 움직이는 최고지도기관이다. 1946년 8월 신민당과 합당하여 최초의 ‘노동당’을 만들었다. 당시 노동자와 농민이 대부분이었던 공산당원이 27만 6000명으로 신민당은 지식인들로 9만여명이다.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대표한다하여 당기에 마치와 낫, 붓을 넣었는데 이는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소련과는 다른 형태이다.
‘조선로동당’의 수뇌부는 수령으로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며 말단까지 촘촘하게 이루어진 거대조직이다. 지금까지 여덟차례의 당대회가 진행되었다. 당대회에서 주요정책이 정해지고 핵심권력이 자리를 잡는다. 권력을 분산시켜 견재하는 남한과 전혀 다른 이질적인 모습이다. 북쪽 사람들은 이러한 이질적인 정치체제에서 70년을 넘게 살았다. 단군의 후예라고 하지만 다른 사고방식의 차이를 알면 괴로울 때가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 당원과 비당원의 차이는 가난과 부를 가르는 기준만큼이나 중요하다. 청년들은 힘들고 어려운곳으로 찾아가 열심히 일함으로 노동당에 입당하기를 희망한다. 할아버지부터 당원으로 출세한 집은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있고 핵심이 되지 못한 주변인은 어떻게나 사회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아름다운 가을날 기념일을 즐기면 얼마나 좋으랴. 남북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니 한글을 쓴대도 어긋나는 문장으로 매번 심중의 고충을 겪는다.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달릴 준비가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부를 가난한 노래가 없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