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다수결’의 두 얼굴

2022.10.12 06:00:00 13면

 

 

‘철인정치(哲人政治)’는 절제를 아는 사람이 경제를, 용감한 사람이 국방을, 지혜로운 사람이 정치를 맡아야 한다는 개념이죠. 플라톤의 이 주장은 선동에 휘둘린 어리석은 다수결에 의해 스승 소크라테스가 아무 잘못도 없이 죽음을 맞은 충격과 슬픔의 결과물로 해석되곤 해요. 실제로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자유’와 ‘평등’을 무절제한 삶을 용인하는 개념으로 여기는 치명적 허점을 드러낸 게 사실이었어요.

 

역사 속에서 무지한 다수결이 빚어낸 중우정치(衆愚政治)의 비극은 그 사례가 귀하지 않아요. ‘공산주의’가 지구촌에 불러온 해악은 그럴듯한 어떤 이념이 궤변의 옷을 입고 민중을 현혹할 때 중우정치가 어떻게 만개하는지를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에요. 히틀러가 탁월한 선동술로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도 공식 집계로만 5646만 명의 인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중우정치의 참혹한 산물이었죠.

 

고대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제가(諸加)회의, 백제의 정사암(政事巖)회의, 신라의 화백(和白)회의 등의 국가 대사를 결정짓던 회의제도가 있었어요. 이 중 화백회의만 유일하게 만장일치제(滿場一致制)를 채택했지요. 화백회의의 결정으로 25대 진지왕(眞智王)이 퇴위했다는 기록도 있으니 가장 막강한 회의체였음이 분명해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한 힘도 여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요? 유추하다 보면 만장일치제의 강한 힘을 다시 생각하게 돼요.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이 편의상 ‘다수결(多數決)’을 의사결정 수단으로 선택하고 있긴 하지만, 완벽한 수단은 아니에요. 이론적으로, 99%가 오류이고 단지 1%만이 참인 극단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선진 민주주의는 ‘충분한 토론’이 선행되지 않거나 ‘소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지 않은’ 다수결의 결과물을 가치 없이 여기는 쪽으로 진화해왔지요.

 

그러고 보니 여론조사에 무한히 휘둘리고 있는 우리의 정치풍토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게 되네요. 불완전한 다수결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포퓰리즘의 마성(魔性)에 찌든 지도자들에게 ‘여론 조작의 유혹’은 강력하겠군요. ‘다수결’ 말고는, 찬반이 나뉜 안건의 결론을 도출할 지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한 해법이 간단치 않은 건 분명해요.

 

그래도 ‘다수결’의 불완전성을 보완할 대안을 어떻게든 찾아내야 할 것 같아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모순과 결점투성이인 ‘다수결’이 빚어내고 있는 참담한 정쟁의 혼란 한복판에서 우리 국민은 짜증스러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 플라톤이 설파한 ‘철인정치’의 가치를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네요. 오죽 답답하면 그럴까 싶지만, ‘소수 독재’의 위험성이 워낙 높다 보니 그게 정말 답이 될 것 같지는 않군요. ‘다수결’을 정의 구현의 유일한 수단으로 맹신하는, 적지 않은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그릇된 인식이라도 우선 좀 고쳐보면 어떨까 싶은 나날이네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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