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영금의 시선] 10월(2)

2022.10.19 06:00:00 13면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속삭이듯 들려오는 한 줄 글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얻고 잃음의 반복이지만, 가을에 부디 아프지 말라고 시가 위로를 건넨다. 점점이 붉어지는 단풍을 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고, 웃고 있을 사람을 생각한다. 수고로이 얻은 성과를 자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가을은 아름답게 익어가고 있다. 

 

10월의 단풍을 아니 보고도 가을을 보냈다 할 수 없다. 쫓기는 원고에 매달려 풍경을 잃어버릴 즘 오랜만에 생각나는 지인에게 살뜰한 전화를 건네면 이미 좋은 곳을 찾아 휴일을 즐기고 있다. 아직 번듯한 명함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말이라도 공손할 일이다. 감질 거리는 생각한 줄 쓰려고 무수한 날이 필요하겠지만 잊는 것도 순간이다. 떠나려고 단풍은 저리도 몸서리치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여기까지 올 수 있다. 

 

부디 아프지 마라. 아무도 모르게 떠나면 쉽게 잊힌다. 먹고살기 힘들어 고향을 떠난 때가 어제 같은데, 건강식만 골라먹는 풍요로운 세상에서 잘 살아야지. 주위를 둘러보면 아픈 사람이 꽤 많다. 쌀이 없어서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에 오니 고질적인 위병이 사라졌다고 좋아하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병으로 아파한다. 자연도 사람도 때가 되면 떠나겠지만 혼자서 괴로워할 필요 없다. 좋은 말, 좋은 글을 읽으며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가을 단풍처럼 서로에게 물들어 갈 일이다.

 

그러나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쌀을 얻으려고 두만강을 건넜는데 이제는 돈 버느라 이처럼 멋진 10월의 가을을 즐기지 못한다. 집에서 직장을 팽이처럼 돌다가 휴일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시체처럼 너부러진다. 봄, 가을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고 다만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몇 마디 고향소식을 듣는데 아낌없이 투자한다. 닫힌 곳인지라 어렵게 일해서 보내는 돈인 줄 모르고 계속 달라면 원하는 만큼 주지 못해 이 또한 마음 아프다. 그나마 연락이라도 닿으면 다행이다. 문득 떠나 소식도 모르고 지금까지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지내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보면 고향이란 가을 하늘에 자유로이 떠도는 구름 조각보다 못하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기적이다. 돈 버느라 허리도 펴지 못하고 살았다면 지금이라도 주위를 둘러볼 일이다. 10월은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는 달이다. 많은 것을 얻은 사람도 있지만 얻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럴 때 위로를 건네는 시인의 글을 읽으며 자연을 찾아갈 일이다. 세상은 읽기도 말하기도 불편한 것들이 많다. 때가 되면 누구라도 떠나는 것이니 사는 순간만이라도 아프지 말고 활짝 웃자. 가지도 못하는 고향은 생각해 무엇하리. 뜻대로 안된다고 화낼 필요도 없다. 그냥 시 한편을 읽고 누군가에 건네줄 한마디가 있다면 그런대로 10월이 좋았노라, 단풍이 좋았노라 하겠다.

 

위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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