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세상(의 모습)을 정직하게 나타내야 한다. 상황을 바르게 표현하지 않는 말은 사람과 사회의 바른 생각을 방해한다. 독하게 말자자면, 기만(欺瞞)이고 사기(詐欺)다.
‘기후변화’의 변화(變化)는 가치 개념이 없는, 무색무취한 단어다. 기후가 변화하고 있단다, 어쩌라고... 하다 여기까지 왔다. 코앞에 닥친 것 아니니 미뤄두자고 했던가.
‘지구온난화’의 검은 구름이 우리(의 의지) 대신 안전핀을 쥐고 흔드는 위태로운 핵폭탄, 지구촌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가 좋은 점도 있다고 했다. 적극 대응해, 가령 새로운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은 ‘의욕’도 볼 수 있었다. ‘성공사례’로 포장되기도 한다. 대구사과가 춘천사과가 됐다.
불가피한 사정도 있으리라. 당장 먹고 사는 일 급하니, 지금도 그런 생각을 벗지 못하는(않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저 현상의 물밑에 잠긴 의미는 뭐지?
아들딸 챙기면 됐지 뭐가 문제냐고들 하지만, 그 아들딸의 아들과 딸, 손자까지 생각하는 것이 사람됨이고, 덕(德)이다. 자칫 눈앞의 아들딸조차 곧 ‘지구온난화’의 태풍 속에 밀어 넣는 것은 아닌지. 지금 미국서, 방글라데시에서 참사는 벌어진다. ‘강 건너 불’이라고? 그런가!
기후변화가 아니고 기후변덕(變德)이다. 기후위기(危機)이자 기후참사(慘事)다. 재난영화에서 보던 말세(末世)의 장면이 실은 지구촌 도처에서 늘 펼쳐진다.
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필시 ‘기후변화’란 언어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변덕 위기 참사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어마무시한 상황은 ‘변화’라는 잔잔한 말로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말의 사기는 또 있다. ‘마약김밥’ 같은 황당한 마케팅 쇼다.
서구(西歐)가 동아시아를 공격한 ‘첨단 무기’가 마약이다. 거대 제국 중국이 영국 해적선 몇 척에 실려 온 마약에 휘청대다 뻗어버렸다. 그 무기는 지금도 인류를 공격한다.
‘좋은 나라’라고 자만하던 우리나라가 그 악귀의 온상이 되어 스스로 무너진다. 심지어 마약의 허브 국가가 되어 이웃 나라들까지 망치고 있다. 꿈에도 상상조차 못하던 지옥 아닌지.
시장에 가 보라. 엉뚱하게도, 마약천국이다. ‘마약김밥’을 비롯한 ‘마약**’가 즐비하다. 그 맛의 중독성 때문에 다시 찾는 음식이라고 광고하는 것이다. 마약(痲藥)의 핵심이 중독성이다. 중독성을 ‘맛있다’와 혼동하게 하는 그 말은, 고의가 아니라도, 큰 범죄의 틀과 같다.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 큰) 맛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사(意思)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경우도 봤다. 모르는 사이에 마약김밥의 ‘마약’은 ‘맛있는’과 동의어로 사람들에게 스미고 있다.
당국은, 어쩔 테냐? 두고만 볼 것인지 엄중히 물어야 한다. 말이 무슨 죄냐고? 비유(比喩)를 이해 못 하는 무식한 소리라고?
말이 씨 되어 세상을 망치는 꼴, 바로보자. 말도 마약도 온난화도, 우선 나부터 고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