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육체적 생명은 참으로 깨닫기 어려운 듯 보이지만, 잘 관찰하면 그야말로 변화의 연속이다. 그러나 극히 어린 시절에 일어나는 그 변화의 시작과 죽음을 동반하는 그 끝은 인간의 관찰이 미칠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래도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예수)
생명은 끊임없이 그 겉모습을 바꾼다. 사물의 겉모습밖에 보지 않는 무지몽매한 인간만이 일정한 형태의 생명을 가진 존재가 사라지면 생명 자체가 소멸했다고 생각한다. 실은, 일정한 형태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은 오로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애벌레가 사라지고 새롭게 나비가 되어 나타난다. 어린아이가 사라지고 대신 청년이 나타난다. 동물적인 인간이 사라지고 새롭게 정신적인 인간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류시 말로리)
도토리는 가지, 잎, 줄기, 뿌리, 즉 모든 외형, 모든 고유한 형태를 잃었지만, 그 속에 자신이 포기한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는 생산력을 간직한 상수리나무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한 외형적인 빈곤은 어디까지나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영원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곧 죽는 것이다. 죽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적인 가능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미엘)
이 세상의 만물은 자라서 꽃을 피우고 다시 그 뿌리로 돌아간다. 자기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과 합일하는 안정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에 합일하는 것은 영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육체가 소멸하는 것에는 아무런 위험도 없다. (도덕경)
죽음은 우리의 영혼이 깃드는 형태의 변화이다. 형태와 그 형태 속에 깃든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갈아야 한다. 죽음을 물리치고 새 삶을 일으키기 위해 갈아야 한다. 엎드리는 자를 갈아치우고 얽매는 제도를 갈아버려야 한다. 갈 힘이 우리 속에 있다. 이를 갈아 결심하면 그 찌끼들이 갈려나갈 것이다. 아니다. 그보다도 차라리 혼에서 쏘는 빛이 나와 도둑 무리가 눈을 가리고 쫓겨가도록까지 마음을 갈로, 지식을 갈고, 힘을 갈아내야 할 것이다. 숫돌이 갈리지 않곤 칼을 갈아낼 수 없듯이 역사를 가는 혁명의 칼도 나를 갈아 세우지 않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이 그것은 하늘 명령이요 민주의 소리였기 때문에, 한 입이 그것을 부르자 만 입이 거기 응하여 온 사화에 불길처럼 번져간다. (함석헌)/ 주요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