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정의 '오늘의 성찰'] 사랑의 허와 실

2022.12.19 06:00:00 13면

 

사랑은 때때로 위험한 말이다. 가족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사악한 행위가 저질러지고, 조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사악한 행위가 자행되며, 인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큰 사악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사랑이 인간 생활에 의의를 주고 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만, 도대체 그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동서고금의 현자들에 의해 해답이 제시되어왔지만, 그것은 언제나 부정적인 답이었다. 즉, 흔히 사랑이라 불리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마치 서로 이방인이나 원수처럼 살고 있는 이 피폐하고 낡은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준다.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여, 그들은 당장 정치가들의 외교활동과 거대한 군대, 수많은 요새가 아주 쉽게 사라지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조상은 어떻게 저런 불필요하고 사악한 것을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고생을 해왔을까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에머슨)

중국의 현자 가운데 맹자와 비교되는 묵자(墨子)가 있다. 그는 권력자들에게 힘과 부와 권력과 위세에 대한 존경심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존경심을 사람들에게 고취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부와 명성을 사랑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랑을 사랑하도록 가르쳐보십시오. 틀림없이 사랑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공자의 제자인 맹자가 그 말에 찬성하지 않고 거기에 반박해, 묵자의 가르침은 묵살되고 말았다. 오늘날 같은 행태가 사랑의 종교라는 그리스도교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

 

사람들의 행위를 선생과 악행으로 나누는 의심할 여지없는 기준이 있다. 그 행위가 사람들의 사랑과 합일을 증대시킨다면 그것은 선행이고, 불화와 분열을 조장한다면 악행이다.

 

불화와 전쟁과 형벌과 증오의 시대를 대신하는 융화와 관용과 사랑의 시대는 반드시 온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미 증오는 영혼에 있어서나 육체에 있어서나, 또 개인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나 유해한 것이며, 사랑은 각 개인과 모든 사람들에게 내적, 외적으로 행복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는 다가오고 있다. 그것이 빨리 오게 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사람들 사이에 사랑을 전파하는 것만이 현재의 사회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너는 내 사랑이지” “나는 당신 것이야요” 따위 가지고는 참이 아니다. 반드시 갈라지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것은 마주 서서 하는 흥정이요 교섭이지 사랑은 아니다. 사랑은 하나됨이다. 둘이면서 하나됨이다. 둘이면서 둘인 줄을 모를 뿐 아니라, 하나면서 하나인 줄을 모르리만큼 하나여야 할 것이다. 두 몸이 한 몸이 된다는 것은 그래서 하는 말이다. 내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내 안에 ‘있음’이다. (함석헌)/ 주요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조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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