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의 아르케] 알쓸인잡

2022.12.20 06:00:00 13면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은 2017년 6월 2일 선을 보인 후 2018년 12월 14일 막을 내린 시즌 3까지 6%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알쓸신잡은 지난 12월 2일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알쓸인잡)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알아두어서 쓸데없는 앎은 없다. 속임수나 가짜뉴스도 평소에 넓게 지식을 축적해두면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사실 공부는 꼭 쓸 데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서, 나의 만족, 자아의 발전을 위해 습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적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원시인류가 말을 하게 되고, 따라서 뇌가 발달하면서 조리 있게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해온 원동력이었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다. 이때 흔히 안다고 하는 것(knowledge)은 라틴어로 스키엔티아(sciéntĭa), 즉 지식이었다. 내가 아는 것은 참인가? 단순히 안다는 것과 지식은 다르다. 경험적 실증적으로 검증된 지식이었다. 그래서 브로노프스키는 “과학이라는 말은 지식에 대한 라틴어일 따름이다.” 라고 했던 것이다. 알쓸인잡에서 다루는 내용에는 단순한 앎도 있고, 검증된 과학지식도 있다.

 

알쓸인잡은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의 모든 인간을 탐구하며 나조차 알지 못했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한다. ‘나만의 영화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인간’을 주제로 한 1회에서는 홍길동전의 허균, 미얀마 출신의 NASA 연구원으로 화성에 헬리콥터를 띄운 미미 아웅, 그리고 진화론의 찰스 다윈을 다루었다. 영화감독 장하준과 BTS의 RM(김남준)이 공동 MC를 맡았고, 김영하 작가와 법의학자 이호 교수,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그리고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인문예술과 과학의 콜라보, 요즘 말로 하면 지식의 융합이다.

 

‘우리는 어떤 인간을 사랑할까?’를 다룬 2회에서 심채경 박사는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만족한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탐구는 고래로 철학과 예술의 제일가는 사유의 주제였다. 근대 이후 철학이 인문사회분야와 자연과학으로 갈라진 다음에는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었다. 두 문화의 반목은 20세기 말 ‘과학전쟁’으로까지 비화되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접점의 단초를 알쓸인잡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형이상학의 사변철학은 물리학과 천문학, 진화론을 만났을 때라야 비로소 인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고갱이 딸의 죽음에 비통해하면서 그린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 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다윈의 『종의 기원』(1859)에 나와 있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이라고 했지만, 실제 내용은 보석 같은 지식들로 채워져 있다.

 

 

김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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