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그 사물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능력이 도와주는 한도 안에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위대하다. 거기에는 색깔과 형체와 크기가 있다. 그런데 인간의 내부에는 색깔도 형체도 수도 크기도 가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 무언가는 이성이다.
만약 이 세계가 이성을 스스로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세계에 있어서 이성은 인간의 이성뿐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세계는 무한하고 인간의 이성은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이 전 세계의 이성일리는 없다.
따라서 세계는 이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그 이성은 무한하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공자)
천국에 대해 얘기할 때, 사람들은 보통 머리 위의 무한한 공간 속 어딘가 높은 곳을 연상한다. 그러나 그때 그들은, 우리가 사는 지구도 그 우주 공간에서 바라보면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 중 하나로 보인다는 것, 그러므로 그 우주의 주민들도 지구를 가리키면서, “저기 저 별을 보라. 저건 영원히 축복받은 장소, 우리를 위해 마련된, 우리가 언제가는 가야 할 하늘의 집이다”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문제는, 우리의 지성이 일으키는 기묘한 착각에 의해, 우리의 신앙의 날개는 항상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언젠가는 다시 아래로 내려와, 어딘가 또 다른 세계에 발을 힘차게 내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칸트)
이 잘 치장된 모습을 보라. 영원하지도 않고 견고하지도 못한 온갖 잡념으로 이루어진 병든 상처투성이의 육신을 보라. 이 육신은 늙고 시들며 병주머니이고 깨지기 쉬운 그릇이다. 썩은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인생은 죽음으로 끝난다. 가을에 버려진 표주박처럼 그 하얀 뼈다귀를 보고 무엇을 기뻐하랴! 뼈로 성곽을 이루고, 살과 피로 칠해진 것을, 그 속에 늙음과 죽음과 자만과 거짓이 도사리고 있다. 찬란한 임금의 수레는 닳아 없어지고, 육신도 또한 낡아간다. 그러나 선한 이의 교법은 시들지 않나니, 선한 이는 서로 교법을 전한다. (법구경)
자기 자신을 단순한 육체적 존재로 보자마자, 인간은 당장 풀 수 없는 수수께끼, 헤어날 수 없는 모순이 되고 만다.
사물의 진정한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하고, 육체적인 것을 정신적인 것과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