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간이 흥미로워 관련된 도서를 읽기 시작한 계기가 있다. 2012년 경기남부지역 통일교육센터 상근직 강사로 2년간 활동했다. 통일교육강의를 하면서 살아온 고향에 대해 무지함을 느꼈다. 경험으로 강의를 이어가기에는 지식이 한참 부족했다. 무지함을 벗어나고자 북한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관련 수업을 듣으며 내가 살았던 공간이 궁금해졌다.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구는 시골답지 않는 도시다. 석탄이 식량만큼이나 중요해 탄맥 있는곳에 인력을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1980년대까지 고층건물이 희소하고, 하모니카로 부르는 급조된 단층집이 많았다. 생산에 집중했기에 서비스업이 부족하고 문화생활이 자유롭지 않다. 새로 나온 영화는 명절시즌에 맞추어 방영되는데, 그걸 보려고 사람들이 빼곡하게 늘어섰다. 뒷거래로 뭉치표를 구매해 야매로 파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유행되었던 음악, 무용, 영화가 흑백화면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도시연구는 평양위주로 많았고 지역도시 함흥관련 선행연구가 적었다. 중요하게 식민도시에서 사회주의도시이행 관련 연구가 없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석박사 논문을 함흥으로 준비했다. 함흥을 읽다보니 내가 살았던 고원군 수동구보다 훨씬 이야기가 많았다. 함흥은 외사촌형제들이 살고 있고 친언니가 함흥 주변으로 시집가는 바람에 닳도록 드나들었던 지역이다. 함흥에 있는 ‘도지방총국기능공학교’에서 직업교육도 받았다. 함흥역전과 동흥산구역, 회상구역으로부터 장진, 부전으로 가는 신흥선 기차를 타고 다녔다. 함흥냉면에 원조 ‘신흥관’에서 농마국수도 먹었다. 1984년에 지어진 함흥대극장 앞으로 수 없이 지나다녔다.
함흥에 얽힌 이야기를 담으니 살아온 생애처럼 사람들이 도시를 만들어온 흔적이 보였다. 아득한 옛날부터 길이 생기고 사람이 모여 도시를 만들어왔다.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사람을 만들듯 도시생애를 통해 사람과 사회가 변화해온 과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떠한 이유로 도로가 생기고, 건물을 올리고,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흔적을 남겨놓았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린다. 그래서 도시를 변압기에 비유한다. 도시는 새롭게 태어나 성장하기도 하지만 쇠퇴하고 몰락하면서 사라지기도 한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회가 연결되어 도시 성격을 만든다. 사람이 모여 있는 만큼 정치적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것이 공간을 지배하고 도시문화를 만든다. 도시와 도시는 비교 가능하다. 개발된 지역과 덜 개발된 지역을 살펴보면 사람과 사회를 알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시간에 도시가 있다. 공간은 영원한데 사람과 사회는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왔다. 색바랜 기억과 지식으로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꺼낸다. 자연, 사람, 사회 요소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다. 북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고,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도시기행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