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황진

2023.01.06 06:00:00 13면

 

"바다는 이순신, 육지는 황진!" 1550년 전라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세종 때 명재상 황희 정승의 5대손으로 27세에 무과에 합격했다. 함경도에 배치되어 6년간 여진족들의 준동을 억누르고 방어했다.

 

1591년 황윤길 김성일이 책임자로 갔던 조선통신사의 수행무관으로 참여했다. 우리 일행을 깔보던 왜의 관리들 앞에서 활쏘기 시범을 보여 그들을 놀라게 했다. 신궁(神弓)이었다. 귀국 후 왜가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에 섰다. 

 

황윤길은 황진의 당숙이었다. 훗날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에서 의병장으로 맹활약하고 전사한 황대중은 황진의 6촌 동생이다. 황진은 일본에 다녀온 후, 동복(전남 화순) 현감이 된다. 이 때부터 일본이 쳐들어올 것을 대비하여, 공무가 끝난 뒤에는 궁술과 기마를 연마했다.

 

마침내 왜군이 쳐들어왔다. 개전(開戰) 때  그의 직급은 종6품이었다. 요즘 군대계급으로 치면 중위 정도의 하위직이었다. 그 말단 무사가 1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충청병마사가 된다. 요즘 계급으로 치면 중장(별 셋)에 해당되는 고위직이었다. 이 초고속 승진은 그의 출중한 활약상을 증거한다. 

 

왜군이 호남을 점령하기 위하여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주성 인근의 이치(梨峙)와 웅치(熊峙)전투에서 황진 부대가 대승을 거둔다. 왜군은 이 패배를 가장 뼈아프게 여겼다. 이 때부터 "바다는 이순신, 육지는 황진"이 만백성의 상식이 된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 있는 모든 장수들에게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고 호남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한다. "지면 모두 자결하라. 가족을 모두 죽이고, 영지는 몰수할 것이다. 사람은 물론 작은 짐승 한 마리까지 다 죽여라."

 

2차 진주성 전투는 권율 등 관군의 총수들도 피했다. 패배가 불보듯 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황진을 위시하여,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이종인 장군 등이 목숨 걸고 진주성으로 들어간다. 관군, 의병 합하여 6천명의 병사로 왜군 10만명을 대적한다. 

 

잘 싸웠다. 3만5천명의 왜적을 죽였다. 황진은 장군의 갑옷과 권위를 벗어던지고 함께 싸우고 같이 일했다. 솔선수범 리더십이 상상을 초월하는 전과를 올렸다. 오호 통재라! 황장군이 저격병의 총탄에 전사한다. 진주성은 다음 날 함락되었다. 1593년 7월 27일이었다. 

 

이순신은 황진의 전사소식을 듣고, "아, 나라 일이 크게 어긋나겠구나!" 하며 탄식했다. 왜군은 성안에 있던 병사와 민간인을 닥치는대로 학살했다. 1만5천명이 죽고, 2만5천명은 남강에 몸을 던졌다. 장군들도 모두 남강에 함께 투신했다. 남강에는 오랜 세월 붉은 물이 흘렀다. 

 

황진 등 진주성을 죽음으로 사수한 장군들이 예외 없이 모두 남원, 나주, 화순, 광주, 남평 등의 호남출신이라는 점은 정말로 놀랍다. 진정한 대의(大義)다. 

 

호남의병들이 "우리가 왜 경상도 가서 싸워야 하는가", 하고 불만을 털어놓자, 최경회 장군이 "호남도 우리 땅, 영남도 우리 땅"이라고 설득해서 무마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호남은 국가의 보루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竊想湖南 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 이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다. 임진왜란의 큰 교훈이다.

 

오늘의 '지역감정'은 가장 더러운 정치술수다.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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