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엑토르 베를리오즈와 라코트생탕드레

2023.01.26 06:00:00 13면

 

프랑스 낭만파 음악의 거장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사랑에 눈이 멀어 살인자가 될 뻔했다. 약혼녀 마리 모케(Marie Moke)와 피아노 제조업자 카미유 플레옐의 염문설이 돌자 이들을 죽이려 했다. 꿈에 그리던 로마상. 다섯 번의 도전 끝에 결국 쟁취했다. 로마의 빌라 메디시스에 도착한 그. 낯선 곳에서 마리-모케의 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안달이 난 베를리오즈. 그때 마침 장모가 될 ‘하마’로부터 편지가 왔다. 마리와의 파혼을 알리며 그녀가 피아노 회사 플레엘의 후계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절망에 빠진 베를리오즈. 곧 분노로 치달아 살인극을 꿈꿨다.

 

 

1803년 12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라코트생탕드레(La Cote-Saint-Andre)에서 태어난 그. 아버지 루이 베를리오즈는 프랑스에서 내놓으라하는 의사였다. 루이는 아들이 자기와 같은 길을 가길 바랐다. 엑토르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한 채 파리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수술실에서 실습 도중 냅다 창문을 뛰어넘어 도망쳤다. 수술실 한 귀퉁이서 쥐들이 모여 사람 척수를 정신없이 갉아먹고 있는 장면을 보고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다.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평소 흥미있어 하던 음악과 문학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어린시절 음악을 좋아했다. 작곡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음악적 훈련은 거의 받지 못했다. 그가 한 것은 고작 클라리넷 운지법과 플래절렛을 후후 부는 정도. 다른 천재 작곡가들처럼 음악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뛰어난 상상력과 음악적 색채로 발상의 전환을 이뤄냈다. 샤토브리앙은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사람”으로, 슈만은 “천재, 그리고 모험가”로 극찬했다. 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총보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친애하고 존경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곡가 선생님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작곡가가 감사를 담아 전합니다.”

 

 

파리의 자유와 낭만에 빠져 새로운 풍의 음악을 작곡한 베를리오즈. 하지만 고향 라코트생탕드레를 자주 찾았다. 베를리오즈의 땅으로 명명된 이곳은 자연과 문화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중심지 비에브르(Bièvre)의 양지바른 언덕길 망루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잘 보전된 자연풍광 속 도시가 훤칠하다. 그 속을 누비는 사저들과, 중세의 시장, 토벽과 흙벽돌을 쌓아 만든 루이 11세 성은 과거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옛날에 상인들의 통행로로 이용된 이곳은 전략적 요충지로 다양한 문화와 풍미 나는 먹거리로 사람들이 들끓었다. 이 도시 한 가운데 베를리오즈의 생가가 있다. 1680년 건축된 이 집은 참으로 고색창연하다. 라코트생탕드레 시는 이 집을 사서 베를리오즈기념관으로 개조하고 그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모아 두었다. 가족과의 추억, 유럽에서 열린 콘서트 사진들, 세계 여행과 관련된 기억의 소품들이다. 매년 8월 열리는 ‘베를리오즈 페스티벌’에 참가한다면 이 모두를 볼 수 있다.

 

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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