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대의 미디어산책] 지킬것 없는 보수, 나아가지 않는 진보

2023.03.28 06:00:00 13면

 

언론이 관념적 유형화를 해서 그렇지 진보와 보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이자 가치관일 뿐이다. 내 살아가는 방법만이 지고지순할 순 없다.


자본주의가 등장할 때 매우 진보적인 사고였다. 마르크스 이후 자본주의는 보수적 이념의 기초가 되고 사회주의가 진보의 토양이 되었다. 분배와 평등은 진보의 담론이다. 그러나 세계사에서 의료보험, 국민연금을 최초로 도입한 건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다.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권위주의 통치자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에 의해 의료보험이 실시되었고 국민연금이 검토되었다. 전 세계가 벤치마킹할 정도로 국민에게 의료울타리를 제공해 주지만 운영개념은 사회주의적이다. 경제 수준에 따라 납부하고 부족분은 국가가 부담하면서 혜택은 똑같이 받는다.

 

진보든 보수든 사회발전을 위해 필요한 게 있으면 서로의 것을 갖다 쓰면 된다. 유럽의 보수정당은 녹색당등 진보정당의 주요 정책 등을 수용하여 실행하고 있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하면서 기성정치인을 수구로 간주하고 혁신적 정치를 표방하였다. 지금 보수 정치인들이 원조로 생각하는 박정희가 그 당시는 혁신이자 진보였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에 대한 논의는 90년 3당 합당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군사권위주의세력인 민정당과 자유보수주의 세력인 YS, 산업화의 주력세력이었던 JP가 결합하였다. 보수세력의 대통합이다. 민자당의 권력축이 점차 YS를 중심으로 한 상도동계로 넘어가면서 민정계와 민주계간에 원조보수 논쟁이 생겼다. 보혁논쟁이 아닌 원조보수논쟁은 우리나라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6·25 전쟁 후 50년 넘게 보수적이지 않으면 다 반공프레임에 걸려 싹이 잘리는 메카시즘에 의해 진보는 자리 잡을 여지가 없었다. 2000년대 넘어 진보개념이 인정되고 보수정당인 민주당이 좀 더 중도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일부 진보적 색깔을 포용하였다. 진보정당도 설립되고.

 

수십 년간 반공과 박정희 시절 산업화 논리로 정치를 하다 보니 보수가 지향하고자 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보수의 가치와 미래를 논의하면서 보수가 시대정신을 이끈 적이 있었나? 고민 없이 반공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가지 테마만 지역주의와 결합시켜 50년 우려먹었다. 이제 안 먹힌다. 문재인정부의 실정과 실망감으로 정권교체가 되었지만 법치와 공정은 선거캠페인일 뿐 우리의 미래를 열어줄 비전은 아니다. 

 

내세울 가치가 없어진 형국이니 지킬 게 없는 보수다. 보수의 위기이자 국가적인 손실이다. 내가 못 본 걸 상대가 봐주면서 서로가 역할을 해야 사회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중도적 보수정당이다. 조건상 우리나라 진보는 중도진보 이상을 논하기 어렵다. 사유의 세계와 현실정치의 차이다. 어설픈 진보 코스프레는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민중시대의 담론으로 4차 산업시대의 정책을 입안하면 유효성이 떨어진다. 토착왜구와 종북세력 싸움으론 이룰 게 없다. 진보대통령 노무현은 보수적 정책으로 한미 FTA를 비준하였고 이라크에 파병하였다. 반공보수 군인출신 노태우대통령은 북방외교를 통해 공산주의 국가들인 러시아, 중국 등과 수교하고 남북한 UN동시가입을 이끌어냈다. 둘 다 대한민국을 한 단계 격상시킨 정책들이다. 

 

보수, 진보가 문제가 아니다. 어떤 입장이든 현실을 직시하고 비전을 창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관성에 빠져 자기 혁신을 못하면 지킬 게 없는 보수가 되고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진보가 된다.

김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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