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하나가 하루를 점령한다. 일본 세키네 쇼지의 ‘죽음을 생각한 날’.
일본 배낭여행 중인 아들에게 남편이 SNS 가족방을 통해 보낸 글 중에 있었다. 학교를 자퇴한 열일곱 살 아들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유럽에 이어 일본을 떠돌고 있다. 아들이 나라 밖 문화, 예술을 많이 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남편은 거의 매일 ‘일본 예술 정보’를 보낸다. 세키네 쇼지의 그림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어두운 하늘 아래, 어두운 나무들 속,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한 사내가 고개 떨구고 걸어간다. 그 배경 모두, 남자의 등을 누르는 십자가로 보인다.
또 다른 그림, ‘신앙의 슬픔’은 어떤가. 어두운 들판을 걷는 다섯 여인, 죄지어 끌려가는 듯도 하고 순교의 길인 듯도 하다. 손에 든 꽃은 사약처럼 느껴진다. 흰옷의 여인들 사이에서 혼자 붉은 옷을 입은 여자. 고개를 유달리 모로 꺾은 그 여인에게 시선이 오래 간다. 아, 그 여인의 배경 또한 십자가로 보인다. 사내와 붉은 옷 여인의 사연이 궁금하다. 미치도록.
화가에 대해 찾아본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스무 해를 살고 폐병으로 죽었단다. ‘죽음을 생각한 날’을 열여섯 나이에 그렸다는 것을 알고 충격받았다. 당장 그의 화집을 구입 하려 했는데, (예상대로) 화집은커녕, 책도 전무하다. 비단 세키네 쇼지 화집뿐일까. 대형서점에서도 일본 화가들의 화집을 본 기억이 없다. 아들에게 세키네 쇼지의 화집을 구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보름 전 일본 여행을 시작한 아들은 떠나기 전, 일본 역사책을 여러 권 읽었다. 학교 졸업한 지 까마득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내게 일본 전사(全史)를 5분 안에 정리해주었다.
조몬인, 야요이족이 살았던 고대에 이어 ‘일본’이라는 국호를 처음 썼던 나라 시대, 사무라이 계급이 탄생한 헤이안 시대, 군사정권 시대를 연 12세기의 가라쿠라,무로마치 막무시대, 그리고 우리나라 조선 중흥기(태종, 세종, 세조, 성종)와 맞물린,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을 이룬 전국시대, 비교적 평화기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시대.
메이지 유신(1868년)으로 근대화에 뛰어든 후, 아시아 패권을 잡기 위해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태평양 전쟁(1941) 등을 차례로 일으키며 전쟁광이었던 제국주의 시기. (우리를 괴롭혔던 임진왜란과 일제 식민지 시절도 상기하자)
그 벌을 받아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 돼 쑥대밭이 되었는데, 한국전쟁특수를 누리면서 다시 일어난 뒤, 서방과의 자유무역 교류를 하며 수출, 기술혁신 집중으로 고도성장, 오늘날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아들에게 일제 강점기는 조선 시대 임진왜란처럼 호랑이 담배 먹던 때 이야기일 것이다.
식민지 시절의 고역과 복수심에 ‘쪽발이 *들’이라며 분개하던 어른들을 보며 성장한 내게 일본 예술품들은 지금도 ‘위안부, 독도 문제’의 색안경을 통과해야만 들어온다.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 자유롭게 문화, 예술을 만나는 아들을 부러워해야 하나.
아들이 돌아오면 격세지감의 다리를 잇기 위해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들어야겠다. 지난 3월 타계한 사카모토는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작곡상(영화 마지막 황제 OST)을 받았던 세계적인 작곡가, 피아니스트면서, 탈원전 및 반핵운동, 2015년 아베 정부의 ‘안보법안’반대, 한국 위안부에 대한 사과 등을 주장하며 평생 양식 있는 세계시민으로 살았다. 그의 음악이 역사 없이 들리는 이유다. 일단 마지막 황제 OST 중 ‘Rain’을 들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