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2023.08.17 06:00:00 13면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참으로 가벼운 몸 컨디션이다. 그동안 답답하고 무겁고 우울한 느낌이었는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침 기분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 기도하는 마음으로 약 먹고 물 마시고 몸을 살폈다. 속으로는 가끔 ‘살고 싶지 않다는 말 내뱉으면서 독한 인생길을 많이 걸었다.’고 푸념도 했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뜨거운 물 커피포트에 담고 생강차 봉지를 넣어 뚜껑을 닫은 채 곁에 두고 마셨다. 약국에서 지어준 어깨통증 약과 감기 몸살 약은 30분 차이를 두고 삼켰다. ‘이게 사는 것인가? 이렇게도 사는 것이구나.’하고 혼자 뇌까렸다. 팔과 가슴에서는 계속 땀이 흘렀다.

 

지구의 온도는 36도라고 한다. 살아오는 동안 몸이 약해 선풍기와 에어컨을 멀리하면서 체질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어젯밤에는 살아남기 위해 한 시간을 돌렸다. 내가 내 몸을 위해 이렇게 예의 갖춰 정성스럽게 약을 복용하면서 건강이 회복되길 소원해 본 일도 많지 않았다. 그래 내가 내 육신에 대한 예의도 있을 것이다. 내 몸의 허전함과 영혼의 그리움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 위로할 시간이 지금이겠지- 싶기도 했다.

 

50년 전 직장 동료와 지금껏 벗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그를 잃고 말았다. 사려 깊은 선배에게 그동안의 교제와 멀어지게 된 원인을 들려주었다. 선배의 대답은 ‘그 사람과의 인연은 거기까지’라고 단호히 말했다. 일복은 많아도 인복이 없는 나는 평생 주눅 든 듯 지내왔다. 그러기에 더욱 그가 멀어져 간 진짜 이유와 내가 조심해야 할 ‘그 무엇’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날 저녁이었다. 커다란 불행을 먼저 경험한 선배 같은 분과 통화를 했다. 목소리며 언어의 분위기에서 가족 같은 편안함과 아픔을 껴안아주는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그랬는데 어느 문학단체에서는 영상녹음 파일을 만들겠다며 인터뷰 일정을 짜놓고 거기에 맞춤하고자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의 건강과 일정 취향, 그리고 준비성과 성취도를 예측할 수 없어 가슴 무거웠다. 나름대로 하루 동안 몸살을 앓으며 인터뷰 안을 작성하고 나니 나는 왜 이렇게도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거울 앞에 가 서 있게 되었다.

 

8월의 캘린더에는 붉은 빛이 번지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8월이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태극기를 그려오라는 과제를 주었다. 컴퍼스가 없는 때라서 밥그릇을 엎어놓고 가운데에 원을 그리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태극기다. 8월의 캘린더에는 광복절이 항상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광복의 빛을 보기까지 독립을 위해 몸을 희생하신 분들을 생각하는 ‘8월의 예의’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間)의 일 가운데에서 사람다운 사람의 길을 가는 공부가 으뜸일 것이다. 이어서 사람들과 무엇인가를 주고받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희망하고, 배신하며, 사는 게 인생일 것이다. 죽음과 친해져야 하는 시간 앞에서 삶의 마지막 문장을 생각해 보는 일도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다 집어치우고 가족의 등대지기나 끝까지 잘하고 싶다. 아픈 마음 달래며 고요히 하루하루 누구의 짐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작가의 길에서 고요히 사람다운 발걸음을 아참마다 제 발로 걷고 싶다.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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