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국민, 주권, 영토라는 세 요소로 구성된다. 구성된다(formed)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다. 국가는 구성되는 것이지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는 영토(헌법 제3조), 법률(국적법)에 따라 인정된 국민(헌법 제2조)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된 주권(헌법 제1조 제2항)으로 구성된다. 반면 정부는 구성되는 것이 아닌 선택된다(selected). 지난해 국민은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를 선택했다. 국가와 정부의 본질적 차이점이다. 정부는 국가의 권력을 위임받아 통치권을 행사하는 정치조직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을 건국운동이라 규정했다. 곧이어 연단에 오른 이종찬 광복회장은 “광복의 과정에서 흥망은 있어도 민족의 역사는 끊기지 않았다”, “정부는 일시 없어도 나라는 있었다”라며 사실상 윤 대통령의 건국절을 비판했다.
일본제국주의는 1910년 8월 22일, 합병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을 복속시켰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조약이 발효된 같은 해 8월 29일 국권을 상실했다. 한일합병은 대한제국의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체결된 것으로 불법 조약이었다. 우리는 이를 경술년(1910년)에 있었던 국가적 치욕이라는 의미에서 경술국치(庚戌國恥)라 부른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인들은 일본제국주의에 격렬히 저항하였고 1919년에는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해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해나갔다. 독립운동은 일본제국주의에 침탈당한 우리나라, 즉 대한민국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목숨 건 투쟁이었다.
이 회장의 정부는 없어도 나라는 있었다는 주장은 한반도가 일본 제국주의에 침탈되어 통치권을 잃었을 뿐 여전히 한반도의 조선인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주권자인 국민은 일본제국주의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정부는 잃었지만, 국가까지 잃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건국운동이라 정의한다면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는 국가가 없었어야 한다. 국가가 없어야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고, 일본제국주의에 투쟁도 건국운동이 될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경술국치를 인정하여 한일합병을 통해 대한제국이 소멸하였다는 주장이다. 즉, 한일합병조약을 인정하는 주장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주장이다.
그래서였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경축사에서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했다. 한일합병조약을 인정한다면 독립운동은 건국운동이 되고 1945년 8월 15일은 건국절이 된다. 그리고 일본은 아무런 사과도 없이 우리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대한민국이 일본의 속국이 아닌 파트너여서 다행이라 생각해 다행이라 평가할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