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화장실 문화와 잼버리대회

2023.09.04 06:00:00 13면

 

계절이 표정을 바꾸는 9월의 아침이다. 어린 철 이맘때쯤이면 어머니는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하셨다. 더불어 ‘소지(掃地)황금출’이라고 마당을 부지런히 쓸고 화장실을 정갈하게 해야 하며, 두엄을 소중히 관리해야 이듬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고 말하셨다. 이때의 분위기가 눈앞에 갈아들면 송강의 시조 ‘형우제공(兄友弟恭)’이 읊어진다.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보아라/ 누구에게 태어났기에 모습조차 같은가/ 한 젖 먹고 길러났으면서/ 딴마음 먹지마라.

백성들을 위한 ‘훈민가’의 하나이지만 형제 간 우애를 더 이상 표현할 길 없게 비유적이고 직설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이때의 부모는 부모답고 형제는 형제다웠다. 왜 어머니는 당신의 젖으로만 길렀는지를 굳이 밝히지 않았어도 어머니는 예수와 같은 희생의 대명사이었다.

 

돌이켜보면 태풍 없는 여름 없고 인생의 태풍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통과하게 된다. 금년 여름도 카눈 태풍에 고통당한 사람이 많았다. 더운 여름살이가 갈수록 험난한 산길 같다. 인터넷신문에서 뭘 찾다가 ‘잼버리의 불편한 진실’과 ‘복지부동이 부른… 잼버리의 진짜 원인’을 읽게 되었다.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열린 ‘2023 세계 스카우트’는 성공적이지 못한 여름 행사로써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한 일 같아 안타깝다,

 

윤 대통령은 스카우트 대원 출신 최초의 대통령이다. 지난 3월에는 한국스카우트 연맹 명예 총재로 추대되었다. 8월 2일 오후 개영식 때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새만금 부지에서 열리는 2023년 제25회 세계 보이스카우트 잼버리 개영식에서 스카우트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장문례를 받으며 손 흔들고 입장했다. 환영사를 통해 대통령은 ‘대한민국 새만금 잼버리 캠핑장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마음껏 젊음을 즐기고 전 세계 스카우트들과 멋진 추억을 만드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런데 물웅덩이, 온열질환, 천상벌레, 비위생적인 화장실 등으로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이번 대회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영국은 대원들을 철수시켜 버렸고, 많은 대원들은 서울로 어디로 분산되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태원참사도 책임자 없이 안타까움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잼보리 대회까지 이 지경이 되었다. 88 올림픽을 치르며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던 붉은 함성이 이 정부의 새만금에서 바닷속으로 묻히는가 싶다.

 

일찍이 대통령은 ‘법대로 공정’하게 다스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무차별 범죄와, 대낮의 살인사건, 흉악한 범죄자는 늘고 있다. 그런데도 누구 한 사람 내 잘못이라고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서라도 물러나겠다는 사람은 없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나 그 가족 되신 분이 스카우트 대원들이 내 아들딸이요, 손자손녀라는 애정을 지니고 현장의 화장실이라도 한번 살펴보았는지 묻고 싶다. 자기 젖 먹여 기르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정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법치보다 덕(德)치가, 자본주의보다 인본주의가 그리운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신뢰할 수 없는 구성원들로 구성된 조직과 국가에 어떻게 생명을 맡기겠는가. 그래서 공생(共生)을 외면하고, 각자도생이라고 나 혼자라도 살아야겠다는 사람들의 슬픈 외침이 늘고 있다.

김경희 demol@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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