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조울(躁鬱)’ 병동

2023.10.06 06:00:00 13면

 

짐작은 했지만, 우리 사회의 우울증 확산이 예상보다 심각하네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최근 5년간(2018∼2022년) 우울증 진료 인원 현황’ 통계에서 지난해 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는 모두 100만744명으로 집계돼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군요. 2018년에는 75만2천976명이었으니 불과 5년 사이에 32.9%나 증가했다는 얘기에요. 최근 확산하고 있는 온갖 사회병리적 현상은 이런 변화와 과연 무관할까요?


사실 우리가 만끽하고 있는 문화의 악영향 중에 가장 고약한 것은 바로 조울증(躁鬱症) 조장이죠. 창작이라는 명분으로 양산되는 온갖 자극적인 유흥들, 특히 전자기술과 연계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수많은 오락이 거의 그렇잖아요. 인간의 희노애락을 극단적으로 충동하는 창작물일수록 흥행이 보장되는 시대에 1년 열두 달 하루 24시간 사뭇 인간의 오감을 뒤흔드는 문화가 범람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기분장애의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인 조울증은 기분이 들뜨는 조증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울증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의미에서 ‘양극성 장애’라고도 해요. 이 증상은 대략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양되면서 생기는 다양한 증상의 조증 삽화(Manic Episode)를 보이죠. 


조증 삽화기의 환자는 대체로 기분이 고양되어 있으나 사소한 일에 분노를 일으키고 과격한 행동을 저지르기도 하죠. 그러다가 충동 조절에 문제가 생기면서 본인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며, 세상사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돼 복잡한 망상으로 발전할 수 있어요. 이 망상이 심해지면, 요즘 우리가 끔찍하게 겪고 있는 ‘묻지마살인’ 같은 참혹한 범죄의 원인으로 작동하기도 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우울증의 폭증과 관련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만 같아요. 

 

물론, 전문가들은 조증을 품행장애나 조현병(정신 분열)으로 오진해선 안 된다는 충고를 내놓고 있긴 해요. 그래도 극한 기쁨과 슬픔을 뒤흔들면서 인간의 감정을 난도질하는 문화적 자극의 범람을 마냥 괜찮다고만 여기는 것은 결코 슬기롭지 못하다는 판단이에요. 대문을 열고 나서면 길거리에서, 문을 닫으면 사이버 세상에서 마구 번지는 자극물들을 그냥 둔 채로 인류의 미래가 무사 무탈하리라고 믿는 이 맹신은 참으로 심각한 어리석음 아닐까요.


영화, 인터넷 게임 등을 구분할 것도 없이, 마약마저 횡행하는 폭력물과 자극물이 넘치는 사회를 방치한 채로 사람들이 맨정신을 유지하며 살기를 바라는 시스템은 분명히 잘못된 거 아닌가요? 이 험악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모두 ‘알아서’ 정서 관리를 하고 제정신을 가누고 생존하라는 것은 너무 잔인라고도 무책임한 거예요. 인간의 평온한 정서를 부수는 극단적인 자극들을 제거하는 일에 이제는 지혜를 모을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거대한 ‘조울’ 병동으로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걱정이 정말 많아지는 요즘이네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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