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마중하는 당신의 배려’ 지하철 어떤 좌석의 글, 시(詩) 구절 같은 비유다. 멋진가?
말과 글(다루는 일)이 직업인 사람도 갸우뚱하는 말이라면 보편성은, ‘꽝’일 터. 주위의 몇 사람에게 물었다. 미래를 마중한다?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아기 밴 여성을 위한 자리이니 앉지 마시오.’라야 했다. 공공(公共)의 언어에서 가장 보기 싫은, 저질스런 대목이 바로 저런 있는 체, 유식한 체다. 당신의 높은 교양과 일반의 수준을 착각하지 말 것.
말글은 뜻을 전하려고 있다. 혼자 ‘잘 썼다’며 자위하려는 따위의 글은 우리의 세금 낭비다. 실례되는 짐작이지만 십중팔구, 그 이상은 베낀 글이다. 표절 절도이니 정직성도 ‘꽝’일러라.
‘인문학’이란 단어 자주 본다. ‘인문학의 홍수’인가. 허나 인문학의 첫 계단인 문자(文字)와 문장(文章)을 밝고 확실하게 사용하는 대목은 ‘글쎄요’다.
옆에는 임신한 여성을 나타낸 듯한 추상적인 도안(디자인)이 그려져 있다. 제목은 ‘임신부 배려석’이다.
그런데 열(10)에 넷(4) 이상은 ‘임산부 배려석’이다. 물었다. 임신부와 임산부는 같은가요? 글쎄요, 같겠지요, 몰라요, 오마 참 이상하다.
효과 얻으려면 임신부도 ‘아기 밴 여성’으로 바꿔야 옳다. 글자 막 깨친 이도 알아야 ‘배려석’은 쓸모 있다. 문젯거리 또 있다. 임산부는 ‘아기 밴 여성’이 아니고 ‘아기 낳은 여성’이다.
임신부(姙娠婦)와 임산부(姙産婦)는 같은가? “왕비마마가 왕자님을 생산하셨습니다”하는 연속극 대사 기억하시는지. 생산(生産)은 농작물처럼, 요즘에 뜸하지만, 아이를 낳는데도 쓰였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 왈(曰), 아이를 낳을 때까지의 여러 사항을 돌보는 과목을 산부인과라고 합니다. 환자 중 임부(妊婦)는 아기 밴 여성, 산부(産婦)는 아기 낳은 여성이올시다.
필수 검토사항, 출산 직후 환자로서의 ‘산부’ 말고, 아기를 낳은 (경험이 있는) 여성 모두를 산부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등산복 입고 활달하게 떠들며 저 ‘배려석’에 앉은 건강한 중년 여성도 임산부(姙産婦)에 포함되는가?
상식적으로, 경험상, (환자로서의) 産婦는 병원이나 산후조리원이나 집에서 치료하고 섭생한다. 서울수도권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지 지하철 객실은 ‘임신부’로 통일 하는 것이 낫겠다.
필자는 ‘아기 밴 여성’을 쓰기를 추천한다. 훨씬 많은 이가 아는 말이다. 품위가 없다고? 우리 한글은 무(無)품위이고 한자어는 고품위인가? 싹수하고는...
배려석(配慮席)의 ‘배려’도 요즘 늘 쓰는 말이기는 하지만, 의미로 볼 때 어렵다. 또 ‘내가 왜 배려해야 하냐?’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필자도 목격한 장면이다.
뱃속 저 아기는 가까운 미래의 우리 모두의 자녀이며, 당신 노후와 나라 미래를 책임질 귀한 인구(人口)다. 배려 아닌 ‘의무’라고 해야 옳다. 그 이상의 단어도 결코 지나칠 수 없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임신부인가? 産婦로 그 기쁜 아픔 경험한 (적 있는) 어머니들은, 아버지들도 이 이야기 다 아신다. 화급(火急)한 저출산 대책에는 이런 마음도 한 몫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