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세상을 등지고 떠난다는 것의 의미

2023.12.11 14:24:57 16면

140.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샘 에스마일

 

넷플릭스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명령어이다. ‘세상을 등지고 떠나라’란 의미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 가족 클레이와 어맨다 부부, 그리고 이들의 자녀 아치와 로즈 남매는 어느 날 충동적으로 집인 브루클린을 떠나 동부 포인트 컴포트라는 해변 마을로 여행을 온다.

 

어맨다(줄리아 로버츠)는 비수기를 이용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에어 B&B를 빌렸는데 집이 꽤나 호화로워서 마음에 들어 한다.

 

 

그런데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거대한 유조선이 해변 백사장으로 돌진하는데 항법 장치의 오류 때문이다. 집 앞에는 자꾸 사슴이 나타난다.

 

처음엔 한 마리, 그리고 점점 더 많이, 나중에는 떼 거지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밤중에 원래 이 빌라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흑인 남자 G.H.스콧(마허샬라 알리)과 그의 딸이 방문을 하고 시내 곳곳이 정전이어서 하룻밤 ‘자기 집’에 머물고 가겠다고 요청한다. 하기야 모든 인터넷이 끊기고 와이파이는 전혀 작동하지 않으며 당연히 내비게이션의 GPS 등도 다 먹통이 된 상태이다.

 

 

와이파이가 전혀 터지지 않고 모바일 폰이 구실을 완전히 못하게 되면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어맨다의 남편 클레이(에단 호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시티 칼리지에서 영어와 미디어를 가르치지만 인터넷이 없으면 당연히 길도 못 찾고, 정보나 뉴스를 볼 수 없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이런 일에 전혀 대비를 하지 않았던 사람인지라 온통 혼돈과 혼란 속에서 헤맨다.

 

그는 사전에 주어졌던 시그널을 전혀 알아 채지 못했던, 그저 모바일 의존증이 절대적이었던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건 어느 정도 어맨다도 마찬가지이다. 16살인 아들 아치(찰리 에반스)는 오직 여자들 몸매에만 관심이 있어 비키니 입은 G.H.의 딸 루스(마이할라 헤럴드)를 몰카로 찍기에만 집중한다.

 

그나마 핸드폰의 사진 촬영 기능은 인터넷과는 상관이 없는 거라 가능한 얘기이다. 동생인 로즈(파라 맥켄지) 역시 오로지 태블릿PC로 시트콤 드라마 ‘프렌즈’의 마지막 회를 볼 생각밖에 없다. 그런데 인터넷이 안되는 상황이다. 로즈도 ‘멘붕’이 오기 시작한다.

 

 

주변은 점점 아수라장으로 변해 간다. 비행기가 떨어지고(당연히 비행 항법 장치가 뒤엉켜 있을 테니) 자율주행차들은 제멋대로 고속도로를 달려가 사고를 낸 후 길을 완전히 막히게 한다.

 

동물들이 뛰어다니고, 이상한 굉음(혹은 극초단파라 불리는 방사능 소음) 때문에 모두들 귀청이 떨어질 뻔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치는 멀쩡했던 이빨이 다 빠져 버리는데 그게 다 이 이상한 소음 때문이다.

 

 

그건 실제로 쿠바 미국 대사관에서 벌어진 일이긴 했다. 아직 그 실체와 배후를 못 밝힌 사건인데 대사관 직원들 상당수가 갑자기 눈이 멀거나 쓰러져 사망했고 그것은 알아챌 수 없었던 극초단파 소음 때문이었음으로 잠정 결론이 내려진 상태다.

 

미국은 이를 러시아의 공작이었다고 생각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의 일이었다. 이때 미국은 60년 만에 쿠바에 대한 경재 봉쇄를 풀고 미-쿠바 간 수교를 맺었다. 1962년 미-쿠바 미사일 사태 이후 처음 있었던 실로 역사적인 일이었지만 극초단파 의심 사건 이후 쿠바 내 미국 대사관은 잠정 폐쇄됐고 트럼프 정부에 의해 수교는 다시 단절됐다. 이번 영화에서 이 얘기가 나오지만 사람들은 잘 알아 채지 못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나마 14살짜리 로즈가 어쩌면 가장 똑똑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엄마에게 침대에 누워 자기가 본 미드 ‘웨스트 윙’에서의 일화를 소개한다. 엄마가 너 ‘웨스트 윙’도 봐?, 라고 묻자 아이는 아론 소킨이 쓴 회 차만 본다고 대답할 정도로 영리하다.

 

로즈가 말하기를 한 남자가 있고 그는 기도를 열심히 하며 살아가는데 어느 날 홍수가 터졌지만 하나님이 구해주실 거라고 믿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남자가 배를 타고 와서 구해 주려 했지만 내게는 하나님이 있다며 거부했고 나중에는 헬리콥터가 와서 그를 구하려 했지만 역시 하나님 핑계로 피난을 가지 않았다.

 

그는 결국 물에 빠져 죽었는데 하나님 앞에 간 그는 왜 자신을 구해 주지 않았느냐고 거칠게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 가라사대, 나는 너에게 배도 보냈고 헬리콥터도 보냈느니라. 로즈는 이 얘기를 엄마에게 자분자분 하면서 “나는 더 이상 앉아서 기다리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실제 강철 룸으로 돼 있는 패닉룸, 곧 방공호를 발견하는 것은 로즈이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영어로 얘기하면 ‘디스거스팅’하다. 욕지기가 날 만큼 자기모멸적이다. 국가 시스템이 붕괴하고 세상이 무너져 내릴 때 사람들, 특히 지식인이라고 떠들며 살았던 사람들, 중산층, 상류 지배층의 사람들은 무능한 것이 아니라 그저 무기력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첨단 기기가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는 모든 것이 속수무책일 뿐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들 우리 자신의 여러 측면을 한 가지씩 반영하고 있다. 어맨다는 필요 이상으로 신경질적이고 계산적이며 G.H.의 딸 루스는 그야말로 ‘싸가지가 바가지’여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화가 나게 만든다.

 

어맨다는 상황이 자기 주도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루스는 어맨다의 태도를 다소 무조건적으로 (인종) 차별적이라고 받아들인다. 예컨대 이런 대사이다. 풀을 가리키며 “당신은 수영 안 해?”라고 루스가 묻자 어맨다는 너나 하라는 식으로 대답하더니 루스마저 안 하겠다고 하자 이렇게 말한다. “왜? 머리 때문에?” 흑인들의 머리는 물에 젖으면 더 곱슬거리게 되기 때문이다.

 

 

투자 분석가이자 미래산업 분석가인 G.H.는 클로이에게 국가 붕괴 3단계를 말한다. 자신의 클라이언트 중에 방산업체 큰 손이 있고 그가 어느 날 가장 가성비가 좋은 프로젝트라며 설명해 준 게 있다는 것이다.

 

첫째 모든 방송 통신을 해킹으로 끊고 타깃 국가를 고립시킨다. 둘째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하나하나 제거한다. 셋째 자연발생적으로 군사 쿠데타를 유도한다. 영화는 실로 그 과정을 차례차례 보여 준다.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에서 가장 무서운 말은 ‘누군가 국가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그 누군 가가 존재하지 않을 때가 더 문제’라는 것이다. 최고의 혼돈과 혼란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온갖 가짜 뉴스와 편견이 판을 치게 만든다.

 

G.H의 이웃이었던 대니라는 남자(케빈 베이컨)는 엽총을 들고나와 G.H.와 클로이를 위협하면서 이 모든 것은 한국이 저지른 짓이라고 말한다. 아니면 중국이거나. 영화에서는 그냥 한국이라고 말한다. 북한이나 남한을 구별하지 않는다. 어쩌면 트럼프 류의 극보수 미국인들은 군사와 테러로 위협하는 북한이나 경제와 문화로 우위에 서려 하는 남한이 다 똑같은 존재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들은 다 어떻게 됐을까. 생존해 낼 수 있었을까. 생존의 가치는 무엇인가. G.H.가 현명한 척 어맨다에게 얘기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일 것이다. 그는 자신들이, 결국 ‘살아남더라도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얘기이다.

 

지금이라도 하루 두 시간 정도는 모바일 폰을 들여다보지 말 것이며 아는 길은 굳이 내비게이션을 보지 말고 이정표와 거리 감각으로 찾아가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영화가 주는 아주 간단한 충고이기도 하다.

오동진 krh083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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