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택진 회계사의 세금 이야기] 옛날 세금 이야기

2023.12.19 06:00:00 13면

 

오늘은 옛날 세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국가라는 조직은 있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으로서 세금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을 것이다. 먼저 서양에서의 세금의 역사는 고대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로마 제국의 세금에 대한 문헌들이 더러 남아있고, 그 중에서 로마 제국은 광대한 영토와 방대한 인구를 다루기 위해 세금 제도의 정비와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로마제국의 세금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에 세리가 등장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후 중세에 들어서는 유럽 역사의 암흑기라 불리는 만큼 세금과 관련해서도 뚜렷한 체계나 제도에 의하지 않고 봉건 영주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른 모습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영주와 국왕들의 세금 착취와 이에 맞서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로빈훗의 모험’이다. 이후 근대 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체계적인 조세 제도가 형성되는데, 당시에는 국가 간 전쟁, 식민지 확장 및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한 재원 조달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자 그러면 옛날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에게는 세금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사 실력이 뛰어난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우리나라에 있어서 역사상 세금의 기원은 삼국시대에 등장한 ‘조 · 용 · 조’ 제도이다.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그 의미를 살펴보면 조(租)는 전(田)에 부과되는 전조(田租)를, 용(庸)은 신(身)에 부과되는 인두세를, 그리고 조(調)는 호(戶)에 부과되는 호세를 각각 의미한다. 이를 좀더 쉽게 풀이하면 조(租)는 토지의 산출물에 부과되는 지세(地稅)이고, 용(庸)은 부역 노동이며, 조(調)는 지역 특산물이나 수공예품을 납부하는 것을 말한다. 삼국시대 ‘조 · 용 · 조’의 구성 비율을 살펴보면 세가지 세금 중에서 조(租)’가 재정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이는 농업경제에 기반한 국가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며 당시 토지가 핵심적인 생산요소였고, 당연히 백성들에게는 농업이 주요한 수입의 원천이었으며, 나아가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나라의 재원도 주로 토지생산물에서 찾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이렇듯 고대의 조세제도는 토지와 직결되는 것이었다.

 

고려의 조세제도는 중앙집권적 봉건국가로서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는데 조세 부담 계층인 농민의 부담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으며, 전조 · 공세(貢稅)와 요역 및 군역이 그것이다. 이것은 여전히 조 · 용 · 조의 조세체계에 기반을 둔 봉건국가의 조세라고 할 수가 있으며, 토지 국유제의 원칙하에 그에 예속되어 있는 일반 농민으로 하여금 농지를 경작하게 하고, 대신 전조 · 공세와 요역 및 군역 등을 조세로서 수납하는 것이었다.  500년 가까이 유지되던 고려 왕조가 무너지게 된 사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고려말 권문 세족으로 표현되는 구세력들의 토지 소유와 조세제도 운영의 문란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라고 한다.

 

한편 토지 개혁을 통한 조세의 형평성이라는 명분으로 건국한 조선의 재정조직은 전기에는 근본적으로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재정수입을 토지 기반의 농민 조세부담에 의존하였다. 다만 재정수입 중 상공세의 비중이 보다 커졌다는 특색이 있을 뿐 절대적인 비중은 농민 부담에 있었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역시 전조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황구첨정’, ‘백골징포’, ‘족징’, ‘인징’ 등과 같은 기행에 가까운 세정의 타락과 악습들로 인해 국가 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민심이 크게 술렁이게 된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조세 제도의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영정법, 대동법, 균역법 등 국사 교과서에서 들어본 조세 개혁들을 시행하지만 체제가 가지고 있는 모순점과 개혁에 대한 구세력들의 저항 등으로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하였으며, 이로 인해 결국에는 조선이라는 국가가 근대국가로 진행하지 못하고 군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큰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과거 이 땅의 세금 이야기를 큰 흐름으로만 살펴 보았지만, 근대 이전의 세금제도는 대체로 토지와 개인을 과세표준으로 하여 부과되는 체계임을 알 수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 제도가 원활하게 작동할 때는 그 국가 체제가 유지 발전하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상황에 들면 체제 위기나 국가 전복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무수한 세계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조선 말 동학혁명은 탐관오리들의 가혹한 징세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고, 프랑스 대 혁명과 미국의 독립전쟁도 당시 부조리한 세금정책에 반대하여 벌어진 사건들로 인한 것이다. 현대 국가에서는 조세법도 하나의 법률이므로 국회라는 입법 기구를 통해 제·개정이 이루어진다. 이따금 국가 경제의 유지 발전 보다는 정파적인 이익의 관점에서 조세법이 다루어지는 모습을 볼 때 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다른 많은 법률 분야도 마찬가지겠으나 특히 조세는 일반 국민의 생활 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의 근간이 되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다. 내년도 세법 개정이 이루어지는 연말 이 시점에 올 해는 부디 정치 논리를 떠나 그야 말로 국리민복의 정신을 담은 좋은 제도를 만들어 주기를 기원해본다.

남택진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