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건국전쟁’이 아니라 ‘이념전쟁’이다

2024.02.15 06:00:00 13면

 

가수 나얼이 영화를 보고 관람인증을 SNS에 남겼다가 "팬으로서 실망이다"는 거센 비판이 쏟아지자 댓글창을 닫아버린 일이 있었다. 강원래도 같은 영화를 보러가서 휠체어가 못들어간 문제를 토로했다가 "봐도 왜 그걸 봐서 난리냐"는 댓글 테러를 불러왔다. 이 사달은 그 영화가 이승만전대통령의 생애를 그린 다큐영화 ‘건국전쟁’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다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에 어디 비난만 따르겠는가? “엔딩자막이 올라가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 “세상에 한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동상하나 없이 이토록 홀대받는 나라가 또 있을까?”라며 개탄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취향에 달린 문제는 빼고 팩트는 짚고 넘어가자. 이승만 동상은 많았고 지금도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국부로 모셔야 한다’며 살아있는 이승만의 동상을 전국에 세웠었다. 419혁명이 발발하자 탑골공원에 있었던 높이 6m의 동상은 시민들이 쇠줄에 묶어 종로거리에 끌고 다녔다. 남산의 동상은 기단부를 합쳐 25m의 초대형이어서 기중기가 동원되어야 했다. 지금 남산에는 2011년 자유총연맹이 다시 세운 동상이 서 있다. 

 

관람후기들을 보면 관객의 90%가 50대 이상으로 국민의힘과 개신교를 중심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듯하다. 국민의 힘은 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로 이어지는 대통령 계보를 치켜세우고 싶을 것이다. 얼마전 1,311만을 찍은 영화 ‘서울의봄’ 때문에 계보 이미지가 구겨져 적잖이 속앓이를 했었는데 “이번에 ‘건국전쟁’이 천만 찍으면 선거 뒤집는다”는 희망고문에 관람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개신교는 “그리스도인 이대통령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며 순복음교회부터 인근의 상영관을 대관해 16일까지 교역자와 신도 등 약 4천명이 단체관람 할 예정이라 한다. ‘사랑하는교회’에서는 영화 제작비의 10%를 후원했다고 자랑하는가 하면 각 교회별로 사발통문을 돌리고 청년부까지 관람을 독려하고 있다 한다. ‘건국전쟁’이 문화전쟁이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얼마전 상영한 비슷한 정치인 다큐영화 ‘길위의 김대중’은 소리소문없이 상영관에서 사라졌다. 여론의 관심을 못받았던 탓이다. ‘건국전쟁’은 언론이 이슈화 시키니 상영관이 늘어간다. 한번 돌아보자. 느닷없는 언론들의 ‘이승만띄우기’의 이면을 말이다. 나는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다른건 몰라도 대한민국현대사의 근원적 문제는 해방이후 친일파를 징치하기는 커녕 미군정과 이승만이 군대, 경찰, 사법, 행정 등 모든 권력을 일제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던 매국노들에게 적산처럼 불하해버린데서 비롯했다. 그로부터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도덕성, 가치관 자체가 붕괴해버렸다. 더 과거로 돌아가면 임시정부 수반 일 때 그는 미국이 한국을 신탁통치 해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가 임시정부에서 만장일치로 탄핵당한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다면,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격분했겠는가?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반역사적 행위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419혁명이 그를 끌어내릴 때까지 이승만의 생애 전반은 개인의 불행 이전에 국민의 불행을 불러왔다. 


이런 이승만도 선거판이면 극우세력에 의해 섬김을 받는다. 원하는 것이 ‘건국전쟁’이 아니라 이념전쟁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큰일이다. 진짜... 기억하자. 오늘은 발렌타인데이가 아니라 안중근의사 사형선고일이다.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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