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총선거가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침에는 예비후보자들의 출근 길 인사를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도시의 유동인구가 많은 건물에는 후보자의 사진과 슬로건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촘촘히 붙어 있다. 유권자들은 총선 경쟁이 정점으로 진입한 것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경기장이라 할 수 있는 선거구 획정이 미뤄지고 있다. 여야 후보자들의 경기는 이미 시작됐는데 정작 경기장은 없는 형국이다.
선거 때마다 반복됐던 국민 참정권 훼손 사태가 이번 총선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직전 선거였던 21대 총선 때도 선거일 39일 전에야 선거구가 획정되서 국민적 비난을 받았지만, 이번 총선은 그보다 더 늦게 선거구 획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우려의 배경에는 두 가지 원인이 지목되고 있다. 하나는 선거구 획정에 대한 여야 정당의 유불리가 다르다는 일반론적 원인이 있고, 공천일정을 최대한 늦추려는 여야 정당의 유불 리가 일치하는 22대 총선 만의 특수한 사정이 두 번째 원인이라는 것이다.
22대 총선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조정을 권고한 지역구는 80여곳이다. 인구 상한선을 넘어 분구되는 지역을 제외하면 21곳 통합, 14곳 구역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야야의 유불리 문제로 마지막 쟁점이 되는 곳은 경기 부천과 전북이다.
민주당은 전북과 경기 부천의 선거구가 줄어드는 선거구획정위원회 안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이다. 이 두 곳은 대표적인 민주당 텃밭 지역인 탓이다. 대안으로 국민의힘 텃밭인 서울 강남이나 대구 달서 등을 합구 대상에 넣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역구 인구수를 기준으로 보면 경기 부천이나 전북 보다 강남구 인구수가 훨씬 적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선관위 선거구획정안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우린 선관위 획정안을 준수해야 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를 종합해보면 현재 여야 간 유불리 조정은 어느정도 합의점을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개특위 관계자는 "영남 지역은 여당이, 호남은 야당이 각자 안을 갖고 오기로 했고, 서로의 안을 존중하기로 했기 때문에 최종 합의에 큰 지장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지막 변수는 22대 총선 만이 갖고 있는 특수한 정치환경이다. 개혁신당 등 양당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만든 제3지대 정당의 출현과 김건희여사 특검법 재의결에 대한 치열한 수싸움이 여야의 공천시계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공천 탈락한 국회의원들의 제3당 합류, 국민의 힘 공천탈락자들의 특검법 재의결 참여 등 고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자칫 이번 선거구 획정이 역대 최대 늑장 처리로 기록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