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과 자유, 권리를 주장하며 죽음을 선택하는 안락사를 다룬 연극이 관객을 만나고 있다. 2010년 런던 소호 극장 초연 후 캐나다, 그리스에서 무대에 오른 뒤, 2016년 국내 초연 이후 세번째 시즌을 맞았다.
주인공은 8년째 만성 체력 저하증을 앓고 있는 베아트리체, ‘비(Bea)’다. ‘비’는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침대에서 지내고 있지만 내면은 여느 28살 청년과 같다. 음악에 맞춰 춤추고 싶고 온 몸의 감각도 제대로 느끼고 싶다. 하지만 실상은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지만 일어날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다.
인간이 느끼는 기쁨, 사랑, 호기심, 즐거움은 병 앞에 무기력해지고 좌절과 슬픔, 비관, 원망이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삶을 저버릴만한 크기의 고통 앞에서 ‘비’는 인간이 가진 자유와 존엄을 선택한다. 온전한 몸으로 사람을 대하고 일상을 이어가고 존재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비’를 돌보는 엄마 ‘캐서린’은 ‘비’에게 끝까지 용기를 주며 삶의 의지를 확인시키지만 그녀를 돌봐야하는 무게에 지쳐간다. ‘캐서린’은 동성애자 간병인 ‘레이’를 고용하는데, ‘레이’는 섬세함과 뛰어난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유일하게 ‘비’를 이해한다.
극은 청춘의 찬란함처럼 활기차다. ‘비’는 침대에서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춘다. 선글라스를 낀 채 노래에 맞춰 머리를 흔들고 파티를 한다. ‘비’는 누구보다도 호기심 많고 웃음이 많다. 이런 ‘비’의 내면은 간병인 없이는 생활하지 못하는 진짜 모습과 대비돼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간병인 ‘레이’의 모습도 우스꽝스러운 말투와 어딘가 허술한 몸짓으로 극의 분위기를 띄운다. 사실 소년원에서 죽음보다도 더 큰 고통을 알게 된 ‘레이’는 ‘비’의 고통을 이해한다. 부자유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인간다운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말한다.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가?’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생명 그 자체의 소중함과 삶의 의지, 희망은 ‘살아있음’을 무엇보다 경이롭게 만든다. 삶이 비록 불행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려는 마음 또한 인간이 가진 능력이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인정한 안락사로 삶의 허무와 생명 경시 등에 대한 우려르는 것도 사실이다.
‘비’의 반짝이는 귀걸이들과 예쁜 옷들, 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 감정들은 그녀의 죽음 앞에서 더욱 대비된다. 그녀의 고통을 유쾌하게 풀어냈지만 선택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죽음 앞에서 삶이 빛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하며 존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한다.
연극 ‘비(Bea)’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 그것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환기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논의는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극은 3월 24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계속된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