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의 아이콘 여성의 노동과 삶에 '존중'을 담다... 전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

2024.03.20 10:50:37 10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 해온 여성의 노동 조명하고 존중의 메시지 보내
해외작가 포함 8인 작가 43점 작품 전시…6월 9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

 

산업화 이후 여성은 경제의 주체로서 노동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남성 중심의 사회 풍토속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가사 노동부터 기지촌 접객원, 화장품 외판원, 1960년대 평화시장 봉제노동자 신순애부터 한진중공업 김진숙까지 노동 인권과 생존권을 위해 싸워온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위로공단'(임흥순 감독, 2015)에 나오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 노동은 과연 정당하게 인정받고 있을까?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여성의 일과 불안정한 노동의 문제점,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은 임금의 크기와 상관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을 조명하고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살펴본다. 부당하게 이용당하거나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과 존중을 요구한다.

 

이번 전시는 전국 국공립 미술관과 사립 미술관 중 유일하게 여성주의를 기관 의제로 설정한 수원시립미술관이 여성의 저출산과 같은 문제 뒤에는 열악한 여성 노동 환경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여성의 연대와 협력으로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고 여성주의 발전을 꾀한다.

 

 

‘여성의 일’을 주제로 강용석, 권용주, 김이든, 로사 로이(독일), 방정아, 임흥순, 카위타 바타나얀쿠르(태국), 후이팅(대만) 등 총 8명의 작가 43점의 작품을 전시하며 여성의 일을 기록한 자료들과 영상을 볼 수 있는 프로젝트 룸이 이어진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작가는 로사 로이다. 1958년 독일에서 태어난 작가는 ‘밤이 오기 전에’(2022), ‘변신’(2022), ‘겨울을 위한 포장’(2022) 등을 통해 여성들이 일하는 모습을 그렸다. 무엇을 함께 도모하거나 서로를 바라보는 2명 이상의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인데,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성, 혹은 미래의 모습을 나타냈다.

 

 

임흥순 작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서사를 기록한다. 광주 비엔날레 출품작 ‘추억록’(2003)에선 작가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모습과 근현대사가 남긴 억압과 폭력의 트라우마를 조명한다. 국가가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에게 어떤 성적인 행동 양식을 취하기를 강요했는지 알 수 있다.

 

 

강용석 작가는 미군 부대가 위치했던 동두천 기지촌에서 일했던 접객원들을 담은 사진 연작 ‘동두천 기념사진’(1984)을 내놓는다. 여성 접객원의 불편한 모습과 적극적인 모습 속에서 한국전쟁 이후 강대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약소국 여성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전시장 내부로 들어가면 태국 작가 카위타바타나얀쿠르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여성이 직접 물레의 일부가 돼 실을 뽑는 모습인 ‘물레’(2018), 물구나무서서 염색하는 모습인 ‘염색’(2018), 몸에 실을 엮고 바늘이 돼 뜨개질을 하는 모습인 ‘셔틀’(2018)로 후기 자본주의 산업 시스템에서 착취당하는 아시아 여성의 현실을 대변했다.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에선 가장 먼저 시각 예술가이자 연구자 김이든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너가 죽은 다음 날’(2022/2023)과 ‘당신의 손에는 오늘도 물이 묻었다’(2024)와 같은 영상은 어디서나 행해지고 있지만 평가절하되기 십상인 돌봄과 가사 노동을 얘기한다.

 

권용주는 ‘연경’(2014/2016)으로 태국의 방직공장을 표현했다. 우리나라와 태국 양국의 경제 발전을 견인한 섬유 산업을 소재로 작품을 이루는 실들은 수많은 노동자의 보이지 않은 업적을 표상한다. 노동과 예술, 사회 시스템의 관계를 연구한다.

 

 

대만 작가 후이팅(Hou I-Ting)은 사회경제 체제하의 노동 환경을 고찰한다. 공장 직원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영상작품 ‘화이트 유니폼’(2017)은 대만일치시기부터 이어진 열차용 도시락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며 성별에 따른 분업과 역사에서 배제된 목소리들을 소환한다.

 

방정아 작가는 우리 주변의 여성들을 그렸다. 노동하는 여성의 강인함을 표현한 ‘웅크린 표범 여자’(2022), 언어를 넘어 위로를 건네는 ‘아무 말 하지 않아서 좋았어’(2016) 등으로 서로 위로하고 연대해 현실을 헤쳐 나가는 여성을 나타냈다.

 

이외에도 현대 노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스크리닝 프로그램 임흥순의 ‘위로공단’(2014)‘, 김정영, 이혁래 감독의 ’미싱타는 여자들‘(2022)’등이 미술관 1층 프로젝트 룸에서 무료로 상영된다.

 

 

여성의 노동을 조명하며 그들이 연대하고 투쟁해온 역사에 존중과 사랑을 표하는 전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은 6월 9일까지 진행된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

고륜형 기자 krh083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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