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코너] 애런 부쉬넬, 레이첼 코리

2024.03.22 06:00:00 13면

 

미국 군복을 입은 한 젊은 남자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그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이름은 애런 부쉬넬이다. 나는 미합중국 공군 현역 군인이고 더 이상 제노사이드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극단적인 시위를 할 것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식민지배자들의 손에 당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전혀 극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곧이어 카메라를 땅에 내려놓고 텀블러에 담아 온 휘발유를 온몸에 뿌린 후 불을 붙였다. 25살 애런 부쉬넬은 그렇게 2월 25일 워싱턴 DC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분신자살했다.

 

산화해 쓰러질 때까지 그가 수차례 외친 구호는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 였다.

 

반이스라엘 저항운동을 하다 숨진 미국인은 애런 부쉬넬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3월에는 레이첼 코리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가옥을 철거하려는 이스라엘에 맞서 시위를 하다 62톤 불도저에 깔려 죽은 사건이 있었다. 레이첼은 본인의 소속 단체였던 ‘국제연대운동’의 형광색 점퍼를 입고 자신이 몇 차례 묵은 적 있는 나스랄라 박사(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집으로 돌진해 오는 거대한 불도저 앞을 맨몸으로 막아섰다.

 

나서지 말라는 걱정스러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녀는 그 자리에서 불도저에 깔려 뭉개졌다. 레이첼을 쓰러트리는데 한 번. 그리고 완전히 깔리도록 또 한 번, 그렇게 두 번을 거쳐 이스라엘 군인은 레이첼의 두개골 그리고 양팔 모두 부러트린 후 나스랄라 박사의 집으로 돌진했다. 그해 레이첼의 나이는 23살이었다.

 

같은 해 4월에는 레이첼의 동료 22살 톰 헌달도 이스라엘 방위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과 관련해서 결국 어느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레이첼의 통역가로 일했던 동료는 그 당시 인터뷰에서 그해 있었던 끔찍한 사고들을 떠올리며 2003년은 ‘진짜 미쳐 돌아가는 해'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21년이 지난 현재. 달라진 건 없다. 이번 전쟁이 시작된 지 166일째,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사망자 수는 3만 1천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당국은 여전히 구호품 차량 진입을 막고 있고, 현재 가자지구 인구 70%는 아사 위기에 처해 있다.

 

한편,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은 지난달 20일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또 다시 부결됐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이다.

 

애런과 레이첼은 결코 우리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위해 누군가 목숨을 희생하길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극단주의가 지속되는 한,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 분노를 활용하여 무엇인가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팔레스타인이 해방될 때까지, 활활 타오르게, 가자지구를 휩싸고 있는 불길 너머로.

정승연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