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볼 수 있는 그림책은 작가의 구상과 아이디어, 원화와 회의를 거쳐 완성된다. 작가가 한 권의 그림책을 완성하기까지의 수많은 과정은 결과물이 되어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MOKA)에서 이런 완성되지 않은 그림책들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전시 ‘언-프린티드 아이디어’가 열리고 있다. 작품 원화, 작업 과정, 더미북을 전시하고 작품과 연계된 활동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고 직접 그림책을 투표하는 자리다. 전시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두 작품이 독립출판의 기회를 얻는다.
올해로 4회 째를 맞는 이번 전시에서는 ‘친구’, ‘자연과 사람’, ‘글이 없는 그림책’을 주제로 일곱 작가의 그림책을 소개한다.
신소라 작가는 ‘친구’를 주제로 일상을 기록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듯 일기장에 적었다. ‘미래의 나’로부터 아무 답장을 받을 수 없었지만, 주인공은 ‘미래의 나’와 함께 성장하며 실패와 방황에 대한 위로를 받았다.
어릴 적 일기장을 토대로 10여 년 전 첫 더미북을 작업했고, 강렬하고 거친 느낌의 채색과 콜라주를 사용해 스토리보드를 다듬었다. 수채화, 선화, 과슈 물감을 이용한 전개가 주인공의 성장을 잘 표현했다. 작가처럼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는 체험도 함께 진행된다.
최정혜 작가 역시 ‘친구’를 주제로 그림책을 그렸다. 친구를 사귀고 싶은 늑대, 그런 늑대가 무서워 도망가 버리는 동물들의 이야기인 ‘궁금해 궁금해’를 만들었다. 수채화 기법으로 아이들의 순수함과 동심을 표현했다. 아이들은 숲 속 나무에 앉아 인형으로 연극을 할 수 있다.
재희와 콩스탕 조이 작가는 ‘자연’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재희 작가는 ‘조우-내가 보이나요?’라는 제목으로 무심코 지나쳤던 야생 식물 ‘왕바랭이’를 발견한다. 보도블럭 틈새, 신호등 아래에서 서식하는 왕바랭이를 통해 누구도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생명력을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다양한 크기의 종이들로 만들어진 책은 왕바랭이의 잎과 뿌리 등을 표현했다. 동그란 무늬, 색연필로 칠한 왕바랭이, 유선지, 초록색 종이 등은 왕바랭이 그 자체가 되며 전시장 내 패브릭 사이, 벽톨 틈에 끼어져 전시된다.
콩스탕 조이 작가는 나무를 태워 만든 ‘목탄’을 이용한다. 목탄을 종이에 문지른 순간, 그 그림이 나무껍질과 같아 보인다는 착안에서 나무의 순환을 얘기했다. 목탄으로 그린 나무 그림은 자연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관람객들은 직접 목탄으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이어지는 2층의 전시에서 전지나 작가의 아날로그 드로잉 방식을 이용한 ‘울지마’, 이민혜 작가의 실을 이용한 ‘끈’, 연영 작가의 인터뷰로 주변 사람의 인생을 수집하고 기록한 ‘얼굴’이 전시된다. 각 작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작업 방식이 독특한 그림책을 완성시켰다.
개막식에 참석한 재희 작가는 “그림책으로 자신이 만족한 것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제껏 살아가며 받았던 많은 것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작가들의 독창적인 그림책을 살펴보고 내가 뽑은 그림책이 출한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6월 30일까지 성남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계속된다.
한편,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작년 4월부터 아이디어를 모집했고, 19명의 작가를 1차로 선정한 후, 프레젠테이션 워크를 거쳐 7명의 작가를 선정, 전시를 개최했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