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뉴스읽기] 폐광 마케팅과 태백의 청사진

2024.06.28 06:00:00 13면

 

태백 장성광업소가 오는 7월 1일부로 폐광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장성광업소는 일제 강점기인 1936년부터 가동된 우리나라 최대 탄광이다. 개광 이래 87년간 석탄 9천400만 톤을 생산하며 서민들의 연료인 연탄 수급을 안정적으로 이루어왔다.

 

약 5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대부분 가정의 난방 연료는 연탄이었다. 연탄을 때워 아랫목 구들장이 뜨뜻해지면 깔아놓은 이불을 나눠 덮고 그렇게 한겨울을 보냈다. 아직 연탄을 때는 가구들이 꽤 있지만 머지않아 연탄을 비롯한 석탄 사용량은 현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며, 환경오염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탈석탄 정책으로 2036년까지 현재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 총 59기 중 절반가량을 줄일 것이라고 한다.

 

태백시는 폐광으로 인한 대량 실업과 경기 침체에 미리 대비해왔다. 장성광업소 부지에 청정 수소 생산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사업계획을 수립,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했다. 그리하여 지난 해 3월 16일에 열린 중소벤처기업부 심의위원회와 4월 11일 개최된 국무총리 주재 규제자유특구위원회를 차례로 통과하여 태백시는 최종 ‘청정수소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되었다. 버려진 산림 바이오매스인 목재 부산물을 활용한 청정수소 생산 및 활용 실증 사업을 규제 없이 전개할 수 있게 되면서 태백시는 2028년까지 10개 기업유치, 450억 원 매출, 200명 고용창출 등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태백 소식에, 폐광과 지방재정 부채로 파산했던 일본 북해도의 유바리시가 떠오른다. 유바리시는 탄광산업이 사양화되면서 1960년 이후 인구가 10분의 1 미만으로 현격히 줄었다. 재정난으로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자 젊은 층은 타 지역으로 이주해버렸고, 고령화 현상은 심해졌다. ‘탄광도시를 관광도시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1980년대에는 테마파크 ‘석탄 역사촌’을 유치하여 관광산업을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시 재정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결국 2006년에 파산을 선언했고, 테마파크는 철거되고 말았다.

 

그래도 유바리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유바리 멜론’이다. 검은 사질토에서 재배하며, 투과성이 좋은 고급 비닐하우스 안에서 각종 첨단 기기들을 이용하여 온도와 습도를 맞추어 키운다. 농가 직원들이 다년간 연구를 거듭하여 과육이 붉고 부드러우며, 맛이 달콤한 ‘유바리 킹 멜론’이라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낸 것이다. 한 통에 7~8만원이나 하지만 맛이 너무 훌륭하여 북해도를 찾는 여름 관광객은 누구나 유바리 멜론을 찾아 한 조각이라도 맛을 보고야 만다.

 

폐광 이후 유바리시의 명과 암을 목도하니, 태백시의 청사진을 다시 펼쳐 되짚어 보게 된다. 행정학자 박흥식 교수가 집대성한 책 '정부마케팅'(2020)에 의하면 정부나 공공기관도 마케팅 개념을 도입해야 하며, 정부마케팅을 통해 공공가치(public value)를 창출해야 한다. 공공가치란 정부 서비스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소비로부터 얻는 다양한 편익의 종합이다. 청정수소 생산지로 변모하려는 태백시는 이러한 사업을 통해 시민들이 얻게 될 공공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정하고 제시해야 할 것이다.

 

태백시나 유바리시 사례는 모두 정부마케팅 유형 중 ‘장소마케팅’에 해당한다. 장소마케팅의 목적은 일자리 만들기, 소득증대, 지역경제의 발전이며, 태백시가 주도하지만 지역 기업과 비즈니스, 주민들과의 협력을 통해 상품을 생산, 판매하게 된다. 어떤 소비자 보다 태백시민들이 청정수소 사업에 주인의식을 갖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태백시 마케팅은 2023년도 노사정 간담회와 노사협의를 통해 폐광을 합의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심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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