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칼럼] 파리 올림픽에 거는 기대

2024.07.15 06:00:00 13면

 

오는 7월 26일, 드디어 세계올림픽이 시작된다. 서른세 번째 열리는 이 올림픽의 개최지는 파리다. 이 도시는 이미 두 차례나 올림픽을 치른 전적이 있다. 1900년과 1924년이 바로 그것이다. 한 도시에서 올림픽이 세 번이나 열리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그래서일까? 프랑스는 이번 대회를 이색적으로 끌어가려고 분주하다. 개막식도 경기장이 아닌 센 강가에서 실시한다. 저 멀리 에펠탑이 우뚝 서 있고 찬란한 물빛 위에는 만국기를 실은 유람선이 둥둥 떠다니는 센 강의 야경무대. 꿈과 낭만의 축제, 마법의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이 행사가 끝나면 바로 다음날부터 단거리 달리기,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스노보드, 피겨 스케이팅 등 각종 경기가 펼쳐진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온 수천 명의 선수가 자국의 국기를 가슴에 달고 금, 은, 동메달을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일 것이다.

 

그렇다면 올림픽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올림픽 경기가 최초로 실시된 건 기원전 776년 여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왕인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 남부의 올림피아에서 경기를 치렀다. 선수들은 4년 마다 제우스신께 승리를 기원하고 그들의 성공에 감사하는 제물을 바쳤다. 이때 우승한 선수들은 올리브 잎으로 만든 왕관을 받았다.

 

제우스의 숭배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동의한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였다. 도시 국가로 나누어진 그리스는 종종 서로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올림픽이 열릴 때만은 자국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휴전을 선언했다. 당시 선수들은 남자들뿐이었고 그들은 알몸으로 경쟁했다. 종목은 오늘날처럼 단거리 달리기와 레슬링도 있었지만 전차경주나 판크라티온 같은 무서운 경기도 있었다. 체급이나 시간제한이 없었고 오직 두 가지 규칙만이 존재했다. “물지 말고 눈을 찌르지 마십시오.” 참가자들은 그들 중 한 명이 포기하거나 죽을 때까지 싸웠다.

 

이러한 올림픽이 돌연 금지된 적이 있다.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가 서기 393년 그리스 종교의 예배 장소를 포기하라는 테오도시우스의 칙령을 발표해 개최를 금지했다. 이 금지가 해제되는 데는 수많은 세월이 걸렸다.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를 재건하고자 노력한 프랑스인 쿠베르탱 남작은 1894년 6월 16일부터 23일까지 파리 소르본 대 원형극장에서 올림픽 대회를 개최했다. 이때 24개 스포츠클럽과 단체를 대표하는 프랑스인 58명과 벨기에, 스페인, 미국, 영국, 그리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러시아, 스웨덴 등 13개국 스포츠 연맹 대표 20명을 포함해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를 계기로 올림픽이 전격 부활되고 국제 올림픽위원회가 창설됐다. 2년 후인 1896년 4월 근대 최초의 올림픽이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아테네에서 열렸다. 그 후 세계 1, 2차 대전 기간을 제외하고 올림픽은 꾸준히 거행되고 있다.

 

스포츠를 통해 상호이해와 우정의 정신으로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 위한 것이 올림픽의 창설 취지였다. 이 원칙을 살려 올림픽 경기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이웃 국가 간의 우호적 경쟁과 평화를 장려하는 흐뭇한 이벤트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상업성과 승리에만 매몰되지 않는 파리 올림픽이 되길 기대해 본다.

 

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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