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7일,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 일대에 집중호우로 인한 대규모 수해 소식이 전해졌다. 8월 중순까지 9차례나 수해 관련 일정을 소화한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는 현장 상황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한국뿐 아니라 국제기구와 독일, 스위스 등 각국의 지원 의사가 타진되고 있으나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자력 수해복구 방침(8.10 대민연설) 속에 일부 러시아의 식량 물자만 수재민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집중 수해 지역인 의주군 중심부에서 10km 가량 떨어진 곳에서까지 관측되는 대규모 수재민용 천막촌(VOA, 8.20자)도 ‘수해복구 전투’의 장기화를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마다 발생하는 변칙성 집중호우는 북한지역에 국한된 문제일까? 얼마 전 지구 반대편에서 치러진 파리올림픽의 경우 때아닌 집중호우로 센강의 수질오염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본고장도 피해갈 수 없는 전 지구적 기후변화 현상 앞에, 한반도에서 비정치적 의제로 군사·정치적 현안에 밀려 터부시되어왔던 환경문제는 이제 시급한 협력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비록 북이 남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남북관계를 ‘조한’관계로 규정하며 민족과 기존의 통일정책을 부정하는 상황이지만 가능한 협력사업이 제로에 수렴하더라도 적대의 온도를 낮추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한반도인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미 현 정부는 120대 국정과제에서 미세먼지·자연재난 공동대응 등 환경협력 추진을 위한 ‘그린데탕트’를 제시하고 있으며 최근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도 기후변화 대응 등의 의제를 다룰 수 있는 남북간 대화협의체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 간 환경협력을 바라보는 상투성의 배제와 공존적 관점으로 인식 전환이다. 남북한 환경협력은 첨예한 대립 양상을 띠는 전통적 안보 현안 대비 상호 수요에 따라 공동대응과 협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건이 마련된다면 과거 사례처럼 강대강 대치 기조의 출구 역할을 할 수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에 국한해보면 한반도에서 비전통적 안보이슈는 환경문제보다는 사이버 안보위협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환경문제가 한반도인들의 삶을 위협하는 실존적 문제라면, 남북간 정치적 문제를 우회적, 단계적으로 푸는 해법 중 하나 정도로 치부되어서는 곤란하다. 자연적, 인위적(군사력증강으로 인한 탄소배출 등)으로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현상을 한반도 ‘환경안보’(Environmental Security)라는 적극적 개념으로 제시, 독자적 지위(status)를 가지고 남북한 환경공동체 정책에 대한 여론의 공감대를 형성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간 남북간 환경협력은 접경, 지대, 생태를 매개로 북한의 산림복원과 접경지역 방제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뤄왔다. 2018년에는 평양공동선언 이행 차원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열린 남북산림협력분과 회의를 계기로 산림병해충 공동방제 약제전달, 양묘장 전달 물자 등에 대한 합의와 통지문 교환이 2019년 초까지 이루어졌다.
향후 남북간 실무협상 채널이 재개시에는 기후변화 대응 뿐 아니라 베른하르트 젤리거 박사(독일 한스자이델재단 한국대표)의 제안처럼 파리협약에 가입하고 기후변화협약(UNFCCC)에 수력발전소 등을 청정개발체제(CDM)사업으로 등록한 북한을 상대로 탄소배출 저감 인증 등 대북제재 해제 이후를 대비한 탄소 배출권 협력사업 논의도 의제 확장 차원에서 고려해 볼만 하다. 한중일 환경장관이 현재 3차(2021~2025)까지 채택한 공동행동계획(TJAP)에 북한을 참여를 권고, 동아시아 차원에서 미세먼지 절감과 탄소 중립에 대한 이행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결론적으로 북한과의 환경협력이 정치·군사적 상위 의제에 종속된 구조이기에 지속성과 안정성 측면의 한계는 뚜렷하다. 당면한 대북제재 또한 협력사업 앞에 놓인 큰 장애물이다. 그러나 기후·환경문제는 통일 이후 도래할 미래가 아닌 한반도에 현존하는 위협이므로 다자간 협력의 관점에서 기후 및 환경에 대한 개선 노력이 주는 실익을 북한 당국이 인지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인내를 가지고 유도하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