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임기가 절반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매일 쏟아지는 여권발 뉴스는 마치 임기 말을 연상케 한다. 특히 수 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갈등은 역대 정권들의 임기 말에도 보지 못했던 수준의 ‘레임 덕(lame duck) 장면’이다.
레임덕 발생의 시작점은 민심 이반이다. 민심을 회복하지 못하면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권위가 무너지고, 이를 방치하면 여권 내부의 권력싸움으로 전염되어 국정동력은 완전히 상실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후반(2016년 10월) ‘최순실 스캔들’로 국정지지율 17%를 찍으며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8월에 20%가 붕괴되면서 레임덕을 피해 가지 못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은 점점 심각해 지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20%를 기록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취임 후 최고치인 70%다. 특히,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렸던 보수층 유권자와 TK, 70대 이상 연령층에서도 지지율이 붕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에 대한 윤 대통령의 리더십 상실은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다. 각 법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벌써 20여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으니, 대통령과 국회의 적대 관계는 역대급이다.
여기에 여권발 레임덕 장면은 더 가관이다. 며칠 전 대통령과 여권 수뇌부 20여 명이 만찬을 했다. 그러나 국정현안에 대한 대화는 없었다. 장기간 지속되는 경기침체 속에 자영업자의 고통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정부의 섣부른 정책 추진으로 국민의 생명권이 수 개월째 위협받고 있으며, 대북전단-오물풍선 공방으로 남북간 갈등수위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 수뇌부가 모여서 밥만 먹고 덕담만 하고 헤어졌다니 가뜩이나 성난 민심에 불을 지른 격이다.
또한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 힘 대표의 ‘독대’논란은 어처구니 없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만나는 문제가 연일 메인 뉴스가 되는 것이 정상인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애초에 한 대표는 대통령과 독대가 성사되면 김 여사 문제 등 현안에 대해 민심을 전달하고 해법을 모색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용산은 이례적으로 당 대표 인사말 순서까지 없애면서 원천 봉쇄했다.
용산은 여당 지도부의 입을 막았을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맹탕 만찬’ 때문에 김 여사 문제는 정국 뇌관으로 완벽하게 부상했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명품백 수수, 공천개입 의혹 등은 하나 하나가 핵폭탄급 뇌관이다.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도 모자랄판에 여당 지도부의 입마져 틀어 막는 모습을 이해 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평생을 함께 할 동지처럼 행동했던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사이가 벌어진 것도 순전히 김 여사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여권의 중론이다. 결국 김 여사 문제를 풀지 않고는 여권 분란 수습도 국회와의 협치도 민심 회복도 불가능한 지경까지 왔다. 이 모든 상황은 윤 대통령 부부와 용산, 검찰의 잘못된 대응으로 촉발됐다.
최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김 여사 명품배 수수 사건에 대해 엇갈린 결과는 내놨다. 명품백을 준 최재영 목사는 기소하고, 받은 김 여사는 불기소 하라는 상반된 판단을 한 것이다. 검찰이 파 놓은 늪에 스스로 빠진 형국이다. 국민의힘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김 여사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한다면, 정치적으로는 야당의 김 여사 특검법에 힘이 더 실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 힘도 김 여사 특검을 언제까지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애둘러 표현한 것이다.
이 외에도 공범이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본격 수사를 미루고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최근 제기되고 있는 ‘김 여사 공천개입’ 의혹은 명품백과 비교도 안 될 메가톤급 사건이다.
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당의 입을 틀어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김 여사 문제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공정한 수사를 약속해야 한다. 민심이 그러하다. 그래야 ‘레임덕 정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약 계속해서 민심에 맞선다면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dead duck) 정국’에 빠질 수도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