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소설가 한강, 역사적 소명으로 인간의 상흔에 빛을 비추다

2024.10.13 07:21:26 10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

 

스웨덴 한림원이 10일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한 이유다.

 

한림원은 이어 "한강은 자기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면서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설명했다.

 

날카롭고 섬세한 표현들, 인간의 연약함을 떨림과 환상적 이미지로 그려내며 역사적 아픔에 공감한 한강의 작품들이 공명을 이끌어내고 있다. 국가의 폭력 앞에 스러져간 개인을 호명하며 끝끝내 작별하지 않는 마음을 전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의 대표작으로,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직시한다. 9살 고향인 광주에서 마주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과 이어지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쫓는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채식주의자’ 역시 가부장적인 폭력에 저항하며 개인의 아픔을 보듬는다.

 

한강은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3대 문학상인 맨부커 국제상과 2018년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았다. 2014년 ‘소년이 온다’로 만해문학상과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했다. 2023년엔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과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한림원과의 인터뷰에서 "내 생각에 모든 작가들은 자신의 가장 최근 작품을 좋아한다"면서 "따라서 제 가장 최근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세 작품을 차례로 소개한다.

 

 

■채식주의자(2007)

 

“그날 저녁 우리집에선 잔치가 벌어졌어. 시장 골목의 알 만한 아저씨들이 다 모였어. 개에 물린 상처가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입을 떠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그릇을 다 먹었어. 들깨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소설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꿈을 꿨다며 고기를 먹지 않는다. 영혜의 남편 ‘나’는 그런 영혜를 걱정하며 지켜보지만 ‘영혜’는 가족 모임에서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는 아버지에게 저항하며 칼로 손목을 긋는다.

 

2부 ‘몽고반점’에선 ‘영혜’의 언니 ‘인혜’와 형부 ‘나’가 등장한다. 비디오아티스트인 ‘나’는 처제인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욕망을 느끼고, ‘영혜’에게 비디오작품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청한다. 결국 둘은 교합하게 되고 ‘인혜’는 이들을 발견한다.

 

3부 ‘나무 불꽃’은 가족들 모두 등 돌린 ‘영혜’의 병수발을 드는 ‘인혜’의 이야기다. 식음을 전폐하고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영혜는 자신이 곧 나무가 될 거라고 말한다. 언니 ‘인혜’는 동생의 죽음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며 자신이 겪었던 폭력에 대해 얘기한다.

 

‘아름다운 동시에 폭력적인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가부장적인 폭력에 저항하며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식물이 되고자 하는 상상력을 전개한다.
 

 

■소년이 온다(2014)

 

“매일 아침 새 관들이 합동 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왔다. 큰 병원에서 치료받다 숨진 사람들의 것이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에 번들거리는 얼굴로 유족들이 리어카에 관을 실어오면, 나는 관 사이의 간격을 좁혀 자리를 만들었다”

 

5.18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동호’는 ‘어린 새’ 한 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은 주검들의 혼을 밝히기 위해 초를 밝힌다.

 

‘정대’의 누나 ‘정미’ 역시 그해 봄 행방불명되며 남매의 비극은 국가의 폭력 앞에 무너진 순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한다. 서대문경찰서에서 검열 문제로 뺨을 맞은 ‘김은숙’, 고문을 당해 하혈이 멈추지 않았던 ‘임선주’, 끔찍한 ‘모나미 볼펜’ 고문을 받은 ‘김진수’등 수많은 희생자들의 얘기를 전하며 국가 폭력의 무자비함과 인간의 악행에 대해 질문한다.

 

 

■작별하지 않는다(2021)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 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인 ‘경하’의 꿈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제주도에 있는 친구 ‘인선’의 집을 찾아가며 이어진다. ‘경하’는 폭설과 강풍으로 고립된 제주 ‘인선’의 집에서 4.3사건의 피해자인 ‘인선’의 가족사를 듣는다. 수십 년간 희생된 오빠의 행적을 쫓은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마음이 무심하게 내리는 눈 속에서 고요히 타오른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사람과 삶에 대한 믿음, 막막한 어둠 속에서 빛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차가운 눈 속에서 뜨겁게 전해진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

고륜형 기자 krh083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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