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여파로 요동쳤던 국내 금융시장이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계엄령 해제 이후 문을 연 증시 또한 약세를 보였으나 우려했던 대폭락 사태는 모면했다.
다만 윤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커지고 있는 정국 불안이 금융시장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투자심리가 위축된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밸류업(Value-up·기업가치 제고)'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일 오후 2시 30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59%내린 2460.47을 기록 중이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1.97% 하락한 2450.76으로 출발한 이후 금융당국의 긴급대책이 발표되면서 낙폭을 소폭 만회했다. 코스닥 지수는 전일 대비 1.91% 내린 677.59에 개장했다.
밤 사이 가상자산·환율 및 해외 증시에서의 한국 관련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탔던 것과 비교하면 국내 증시는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가상자산은 삽시간에 20~30%씩 떨어졌으며, 쿠팡 등 뉴욕증시에 상장된 한국 관련 종목도 최대 8%의 낙폭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야간장에서 급등하며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3월 16일, 1488원) 이후 최고치인 1446.5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규장 대비 40원 이상 오른 것으로 과거 환율이 장중 42원 이상의 변동폭을 보였던 시점은 IMF 당시인 1997년 12월과 1998년 1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0년 3월 뿐이다.
국내 증시의 낙폭이 제한될 수 있었던 것은 6시간 만에 계엄령이 해제되는 등 사태가 빠르게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도 1410원대로 내려오며 안정을 찾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새벽 2시 마감가(1425원)보다 6.9원 내린 1418.1원에 정규장의 문을 열었으며, 이후 한때 1418.8원까지 오르며 올해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문제는 사태 진정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증시 대폭락 등 당장의 위기는 막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정치적 불확실성은 평소보다 훨씬 커진 상황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 정치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시장에 큰 파장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나증권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명박 정권의 광우병 사태 당시 외국인이 2개월간 3조 원을 순매도하면서 코스피 지수는 2.9% 하락했다. 2016년 박근혜 정권의 '최순실 게이트' 사태 때는 외국인이 단 5일 동안 9800억 원어치를 팔아치우면서 코스피 지수는 3.4% 하락했다.
외신과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정치적 변동성에 유의하라고 경고하며 한국 기업 주가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통신은 “비상 계엄으로 촉발된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허를 찔렀다"며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이 임박하고 중국 경기침체로 심리가 위축된 상황 속에서 주요 경제국이자 글로벌 무역의 기둥인 한국에서 이같은 깜짝 움직임이 일어나자 투자자들이 더욱 신중해졌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인 칼라일의 제이슨 토마스 글로벌 리서치 및 투자 전략 총괄도 “윤 대통령의 이같은 결정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실제적으로 강조시키는 격"이라며 “정치적 이슈는 몇 달 이내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장기화할 것으로 보여 앞으로 상황이 매우 복잡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로 인해 하반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외국인·기관의 '셀코리아' 현상이 가속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윤석열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밸류업 정책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국 고유의 정치 불확실성이 증폭된 상태이므로 향후 단기적으로 국내 증시의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한 소지가 있다"며 "전일 외국인은 코스피 순매수 금액(5650억 원)은 8월 16일(1조 2000억 원) 이후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하는 등 공격적인 순매도세가 종료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후퇴시킬 수 있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김윤정 LS증권 연구원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올해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로서 적극 추진해온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으로 추진 동력이 돼야 할 법안 개정 필요 안건들이 빠르게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 중이던 상황"이라며 "이번 사태로 현 정권의 리더십과 정권 유지 여부에 대해 빨간불이 켜지면서 정책 추진 주체이자 동력을 상실할 위험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