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정한론

2024.12.09 06:00:00 13면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일본의 20대 청년 하나가 3년(1878~1881) 동안 조선의 무인도를 탐사한다. 다도해 부근에도 수시로 왕래하면서 조사했다. 현해탄도 네 차례나 항해했다. 그는 메이지 정부를 반대하는 인사들과 어울려 군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곧바로 큐슈의 한 정치인이 운영하는 학교에 가서 한문 선생을 하기도 했다. 그 얼마 후, 마음에 맞는 친구와 '근대시문학'(近代詩文學)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여러 해 동안 출판사를 했다. 시도 썼다. 

 

동양사회당(東洋社會黨)을 창당, 평등세상의 꿈을 선포하고 도전했으나, 시대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정당은 해산당하고 두 차례나 옥살이를 했다.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의 후원자이며 동지였다. 이토록 다종다양한 경력은 그를 당대의 석학으로 진화시켜주었다. 중국과 조선에도 자신의 뜻을 전하여,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이른 바, ‘대동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는 다루이 도키치(樽井藤吉.1850~1922)라는 사람이다. 위와 같이 호기심이 강했다. 야심도 컸다. 게다가 똑똑하기도 했다. 그의 책 '대동 합방론'이 나온 것은 1893년이었다. '일본인'이란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낸 것인데, 특히 중국에서 호응이 컸다. 한문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1898년 淸나라 말기, 중국 최고의 석학이었던 양계초(梁啓超. 1873~1929)가 서문을 써서 상하이에서 출판했는데 물경 10만 부였다. 요즈음으로 환산하면, 아마 1000만 부쯤 될 것이다. 그 일부가 조선에 들어왔다.

 

양계초는 이 책을 "공자의 대동사상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의 찬사가 조선과 중국의 지식인사회를 격동시켰다. 특히 조선의 친일지식인들에게는 그 이상의 경전이 없었다. 동학3대 교주 손병희와 함께 동학운동의 최고 지도자들 가운데 하나였던 이용구는 '대동합방론'을 읽고 불세례를 받았다. 아들의 이름을 '대동국남'(大東國男)이라고 짓고, "동양제국은 하나로 힘을 합하여 서양에 대항할 아시아 연방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곧바로 변절했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일진회 총수가 되어 용역사업으로 전국의 의병들을 토벌하는 짓을 벌인다. 당시 고종을 폐위하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는 정미7조약(1907년)으로 전국에서 15만 명의 의병이 일어나서 5만 명 이상 죽거나 다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일진회의 자위단 병력도 1만명 이상 죽었다. 고종이 일본의 요구에 굴복하도록 궁궐 밖에서 위협시위를 한 것도 일진회였다. 용역비는 300만엔이었다. 요즈음 가치로 환산하면 300억원 정도였다.
일본은 “일이 잘 끝나면 3000만엔도 무슨 문제겠는가”하며 이용구를 악마가 되어 뛰게 만들었다.  

 

다루이는 "조선과 일본은 원래 한 민족이었으니 다시 합쳐서 연방을 만들어야 한다. 국호도 '대동'(大東)으로 하자. 그런 다음 대동국이 중국, 동남아시아와 연방을 이루어 큰 하나가 되어서 서양의 득세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일본이 '왕초'로서 전체를 지배하는 그림이었다.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하지만, 그 내용은 당대 동양 지식인들의 마음을 뜨겁게 얻었을만큼 설득력이 있었다고 한다.

 

근사한 이론의 형식을 갖추었지만, 본질은 정한론(征韓論)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風臣秀吉. 1537~1598)로부터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1828~1877)와 다루이 도키치,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까지, 일본의 수뇌부는 변함없이 우리나라를 일본땅으로 하는 게 꿈이다. 이토 시대의 지식인들 대부분은 한반도를 따옴표('  ')도 없이 신영토(新領土)라고 쓰거나 말했다. 우리땅을 대륙진출의 다리로 삼으면서, 내지에서 필요로 하는 물산의 공급지로서, 중국이나 러시아와 싸울 때 병력동원과 군수기지로 삼고 싶은 열망은 그들의 DNA가 되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벌어진 초현실적인 '비상계엄' 앞에서 불편하고 화나고 우울하다. 만감이 교차한다. 걱정이 태산이다.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수 백년 동안 변함없이 추진되어 온 일본의 정한론이다.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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