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실손의료보험 개편안을 두고 의료계와 환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개편안은 실손보험 난도질에만 집중해 혜택이 정말 필요한 환자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마저 대두된다. 실손보험을 매개로 한 과잉 진료 및 필수 의료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실손보험이 의료시스템 붕괴의 주범이라는 극단적 비난만을 의식한 졸속 개편은 안 된다. ‘재벌 보험사 배만 불린다’는 비판을 받는 정부의 개혁안이라니 될 말인가.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9일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편안을 발표했다. 오남용 우려가 높은 비중증·비급여 치료의 가격과 진료 기준을 건강보험 체계에 맞춰 일원화하고, 비급여와 급여 치료를 섞어서 처방하는 ‘병행 진료’를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남용 우려가 큰 비급여 항목을 관리 급여로 전환해 건강보험 체계로 편입시키고, 본인부담률을 90~95%로 높여 적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개편안에는 5세대 실손보험의 경우 질환을 중증과 비중증으로 구분해 비중증 치료의 자기부담률(현행 30%)을 50%로 높이고 5000만 원이었던 보장한도를 1000만 원으로 낮추는 내용이 담겼다. 적용 대상은 진료비와 진료량, 가격 편차가 크고, 이용 증가율이 높은 비급여 항목이다.
관리 급여의 구체적 항목은 미확정이지만 비급여 진료비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무릎 주사, 비타민 주사 등 10개 안팎이 포함될 전망이다. 관리 급여를 적용하면 실손보험이 있어도 환자의 자기 부담률이 급상승해 과잉 진료·치료 유인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의사는 고가의 비급여 진료를 권유하고 환자는 실손보험을 믿고 의료 쇼핑을 남발하는 기이한 공생구조를 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정작 의료계는 “재벌 보험사들의 배만 불릴 것이 너무나 뻔하다”며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환자마다 질병의 상황이 다른데 이를 일괄적으로 ‘비중증’으로 묶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극단적이며, 환자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입장문을 통해 “비급여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실손보험 제도 개편 방안은 국민의 건강권,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법적 정책이 될 것”이라며 “보장성이 대폭 줄어든 5세대 실손의 경우, 새로 실손보험에 가입하려는 국민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환자들의 반발도 예사롭지 않다. 실손보험을 믿고 치료해온 환자들은 날벼락을 맞은 듯한 표정이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는 “재계약이 없는 1세대와 2세대 일부 가입자들은 어떤 방법을 써도 혜택이 축소된 5세대 실손보험으로 자발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법 개정을 통해 강제전환을 추진한다면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고, 위헌 판결이 날 가능성도 높다”고 경고했다.
치료 방법 선택은 기본적으로 의사들의 영역이다. 천차만별인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좀 더 나은 치료법을 선택하고, 환자의 동의를 얻어서 시행한다. 정부의 개편안은 환자들 개개인의 형편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결국 돈 있는 환자들만 좋은 치료를 받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런 냉혹한 정책이 어디에 있나. 국가 의료보험 체계가 책임지기 힘든 의료복지 영역을 대신 감당해온 실손보험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 국민이 보험사와의 계약으로 건강권을 넓혀온 부분을 일체 무시하는 개편안에는 심각한 하자가 내재한다.
정부의 정책은 다시 다듬어져야 한다. 국민 건강이 증진되기는커녕 형편이 안 되는 환자들에게만 불이익이 가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야 되겠는가. 정부는 절박한 처지에 있는 환자들에게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