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통신] 독립운동 국외 사적지, 모니터링 시스템 갖춰져야

2025.04.14 11:18:25 16면

홍범도 기념공원 관리 위한 관심과 지원 필수
고려인 민족 정체성 함양 위한 공간으로 활용돼야

 

"카자흐스탄에서 봄은 '나우르즈'와 함께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나우르즈'는 새로운 날(new day, 설날)이라는 의미이며, 이란과 중앙아시아, 중동, 코카서스 지역 등 페르시아 문화권과 투르크계 민족들이 사는 지역의 가장 큰 명절이자 봄 축제이기도 하다.

 

카자흐인들은 초원에 새싹이 돋고 생명을 가진 만물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나우르즈’를 옛부터 날 중 최고의 날로 여겨왔다. 수천년 동안 유목민으로 살아온 카자흐인들에게 가축이 새끼를 낳는 계절이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우르즈가 오면 축제를 열고 덕담을 건네며 소원을 빈다. 또 새 옷을 입고, 유목민의 이동식 천막 ‘유르타’로 손님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는데, 고기와 각종 통곡물을 넣고 만든 '나우르즈 코줴’가 대표적인 음식으로 꼽힌다. 축제 현장뿐 아니라 시내의 식당이나 호텔에서도 손님들에게 ‘나우르즈 코줴’가 무료로 제공된다.

 

우리의 선조들이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지를 곧 낮이 다시 길어지는 시작점으로 인식하고 새해를 맞을 준비에 들어간 것에 반해, 이 지역 사람들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을 새해의 시작으로 여기고, 이날부터 보름 동안 부모와 친지를 찾아뵙거나 이웃을 챙기는 풍습을 지키면서 다양한 의식과 문화 행사를 벌이는 것이다.

 

 

사실, 나우르즈는 소련시절에는 기념하지 않다가 고르바초프가 1985년에 집권하고 추진했던 개혁·개방정책의 영향으로 부활됐고,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카자흐 정부는 대체 휴일을 포함해 3월 21일부터 25일까지 5일간 나우르즈 연휴로 선포했는데, 나는 이 연휴를 활용해 카자흐 국내 여행 겸 나우르즈 축제의 원형을 제대로 보기 위해 카자흐인의 풍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크즐오르다로 향했다.

 

러시아 혁명 직후 한때 이 도시는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였고, 1937년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이주 당시 고려원동사범대학과 신문사, 극장 등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기관들이 이주한 곳이며 특히 홍범도 장군이 말년을 보냈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크즐오르다 지역은 중앙아시아 최대의 벼 생산 지대인데, 천산산맥에서 발원한 시르다리야 강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수많은 고려인 꼴호즈에서는 벼농사를 하고 있다.

 

알마티에서 크즐오르다까지는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했다. 비행기는 약 2시간 정도 날아가 크즐오르다 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내렸고 새로 개장한 여객 터미널 앞에 멈춰섰다. 작년 11월에 새로 문을 연 터미널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인천국제공항터미널 못지 않게 깔끔하고 편리했다. 

 

공항에 마중 나온 옛 제자는 나우르즈 명절을 앞두고 시민들이 자신의 집안 청소는 물론이고 대문 앞 거리를 쓸었고, 시 당국은 물청소 차량을 동원해 도로 청소를 함으로써 봄이 왔음을 알리고있다고 귀뜸했다. 매번 이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아랄해에서 불어오는 소금 바람과 먼지로 고생했었는데, 이번 방문에서는 예년과 달리 도시에 가득한 봄기운까지 더해 상큼한 기분이 들었다.

 

공항에서 홍범도 장군 기념공원으로

 

 

나는 공항 터미널을 빠져나오자마자 홍범도 장군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나우르즈 봄 축제는 다음날 부터 시작되기도 하려니와 크즐오르다을 방문하는 이는 가장 먼저 홍범도 장군 동상과 기념관이 있는 이 곳을 방문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크즐오르다 공항 터미널에서부터 상큼했던 기분은 홍범도 장군 동상에 헌화를 마치고 기념관에 들어서자 마자 정반대가 되었다. 고약한 냄새가 기념관내에 가득했고, 독립운동 공적이 적혀 있는 전시 판넬의 접착면이 떨어져 너들거리는 것이 눈이 띄었기 때문이었다. 천장은 누수로 인해 심하게 얼룩이 져 있기까지 했다. 개관한 지 채 1년도 안된 건물에 물이 새다니… 이런 일은 처음부터 발생하지 말아야 하지만, 이러한 하자가 발생했을 때 즉시 발견하고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것에 더 화가 났다.

 

 

이 기념관은 홍범도 기념공원의 일부로써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할 당시 우리 정부가 홍범도 장군 묘역에 고려인 동포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할 공간의 조성을 약속함으로써 생기게 되었다.

 

2023년 11월 3일에 참배 공간이 먼저 개장했고 작년 하반기에 '홍범도, 계봉우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전시공간까지 개관됨으로써 '홍범도 기념공원' 조성 사업이 마무리 된 것이다. 약 300여 평의 부지에 조성된 이 곳은 '통일문'이라는 한글 현판 아래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는 성문 느낌의 묵직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게 돼 있다. 정면에 홍장군의 흉상이 서 있는 참배공간과 왼쪽엔 '홍범도, 계봉우 기념관'이 오른쪽에는 방문객을 위한 휴식공간이 배치돼 있는 구조이다.

 

 

2023년 개장 당시, 윤종진 보훈부 차관과 우원식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해 모국에서 온 많은 손님들이 참석함으로써 우리 정부가 독립운동유공자들을 어떻게 예우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고려인 동포들에겐 모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했고, 카자흐인들로부터도 감탄과 부러움을 샀었다.

 

독립운동 사적지는 항일독립정신을 후대에 전달하는 공간

 

올해는 광복 8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익히 아는 봉오동, 청산리 대첩의 홍범도, 김좌진 장군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조국 독립을 위해 거꺼이 바친 이름없는 부대원, 일제의 토벌 작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주먹밥과 군복을 바느질해 주었던 여인네들까지 모두 하나되어 조국 독립을 열망하고 헌신한 기초 위에 세워졌다고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러한 독립운동가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유적지는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과 의지를 후대에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는 동포 차세대들의 민족 정체성 함양을 위한 훌륭한 교육장으로써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 동포사회와 함께 국가적인 관심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동시에, 이 곳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조치하는 모니터링 체계를 잘 마련해야 한다.

 

광복 80주년인 올해, 국가보훈부는 청소년들을 선발해서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할 계획이라는데 홍범도 장군 기념공원도 탐방지에 포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외에도 여러 민간단체에서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모국에서 오게 될 청소년들에게 빗물이 새 얼룩진 천장이나 너덜거리는 전시 판넬,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기념관이 아닌 순국 선열들의 정신이 담긴 제대로 된 전시관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이 크다.

김상욱 알마티 고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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