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윤 전 대통령은 극우 유튜버 전한길씨가 제작한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했다. 6·3 조기대선이 13일 남은 시점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한복판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지난 달 4일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탄핵된 후 첫 공개행보였고, 김문수 후보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국민의힘을 탈당한 지 불과 나흘 만이다.
소식이 알려지자 국민의힘 내부는 물론 보수 정치권이 크게 술렁였다. 당은 ‘탄핵의 강’을 건너기 위해 비대위원장을 교체하면서까지 몸부림치고 있는 마당에 당사자인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만든 다큐멘터리를 관람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가뜩이나 어려운 대선레이스 후반에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는 반응이 주류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은 탈당해서 우리 당과 관계가 없는 분"이라면서도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에 대해 반성과 자중할 때가 아닌가"라고 비판적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조경태 의원은 "누굴 위한 행보인가. 결국 이재명 민주당 제1호 선거운동원을 자청하는 것이냐"며 "본인 때문에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 반성은커녕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한심하다. 자중하기를 바란다"고 했고, 김근식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제발 윤석열을 다시 구속해달라"며 "우리 당이 살고 보수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재구속만이 답"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도 "윤 전 대통령의 이 기행은 김문수 후보에게 완전히 찬물을 뒤집어엎어 버린 것"이라며 "음모론에 물들면 이렇게 계산이 안 되는 행동을 한다는 걸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또 조 대표는 "'부정선거 음모론자 윤석열'은 상당히 점잖은 이야기"라면서 "(제가) 농담삼아 하는 이야기가 윤석열의 반대말은 맨정신"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문제는 김문수 후보의 어정쩡한 태도다. 당 안팎에서는 윤 전 대통령의 이런 기행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김 후보는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서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는 제가 드릴 말씀이 못될 것 같다"며 "이런 영화를 보면 우리 표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소리는 조금 적절치 않다"고 말하며 오히려 윤 전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등장과 김 후보의 모호한 태도 때문에 국민의힘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이준석 후보와의 단일화는 일말의 여지조차 사라진 형국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 전 대통령이 탈당한 지 나흘만에 ‘부정선거 음모론’을 들고 다시 대선 한복판에 등장한 이유가 무엇일까. 국민의힘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탈당까지 한 마당에 김문수 후보를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 뻔한 이러한 정치행보를 일반적인 정치상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건희 여사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도이치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김 여사와 관련된 사건들이 줄줄이 재수사에 들어가고 있고,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통일교 전 핵심 간부로부터 샤넬백을 받았다는 근거가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윤 전 대통령의 정치행보가 재개됐다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검찰의 거듭된 소환에도 김 여사는 응하지 않고 있다.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수사 검사들은 체포영장을 검토했으나 검찰 지휘부의 부정적인 의견때문에 대선 이후에나 다시 소환 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 소식통에 따른면 최근 이창수 중앙지검장 등 친윤 검찰 고위인사들이 사의를 표명한 것도 김 여사 수사와 관련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있어도 하늘을 없앨 수는 없다. 뇌물, 주가조작 등 대부분 파렴치한 범죄 수준인 김 여사의 혐의는 어설픈 정치적 쟁점으로 묻혀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중하고, 김 여사는 검찰수사에 성실히 임하길 바란다. 당신들의 기행이 보수정치의 궤멸까지 이어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