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하나 없는 경기도…폭염 속 일하는 사람들

2025.07.09 06:00:22 1면

"현장에 휴식 규정 있지만 지키는 데는 드물어"
10일 중 9일 열대야…폭염 장기화 가능성 '비상'
"더위로부터 노동자 보호 제도 부족…대책 필요"

 

“물은 진짜 얼음물이어야 버틸 수 있어요. 아니면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8일 오후, 수원시의 한 건설현장. 60대 노동자 김모 씨는 온몸이 젖은 작업복을 훔치며 말했다. 체감온도는 37도를 웃돌고, 머리 위로는 그늘 하나 없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임시 차양막이 설치돼 있지만, 바람 한 점 없는 공사 현장에서는 사실상 효과가 없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일 경우 실외 작업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충분한'이라는 모호한 문구와 '작업 중단 의무 없음'이라는 규정 탓에 현실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김 씨는 "위에서 '쉬라'고 하면 좋겠지만, 현장은 일이 밀리면 사람부터 쪼인다"며 "결국 쓰러지기 직전까지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폭염의 위협은 공사 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기도 내 물류기지와 주차장, 도로 위의 택배기사와 배달 노동자들도 그대로 뜨거운 열기에 노출돼 있다.

 

택배기사 A씨는 "차 안은 40도가 넘는다. 에어컨을 계속 틀면 기름값이 감당 안 된다"며 "하루 10시간 넘게 배달하면 어지럽고 구역질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스조끼 하나로 버티고 있지만, 하루 종일 땀이 마를 틈이 없다.

 

기상청에 따르면 경기 남부는 최근 10일 중 9일이 열대야였고, 낮 기온은 35도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동해북부 해상에 위치한 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동풍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 체감온도가 35도 내외로 올라 매우 무덥겠고, 열대야가 나타나는 곳이 많겠다"며 "고기압이 강화될 경우 8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부터 이달 6일까지 경기도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104명. 지난해 같은 기간(108명)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본격적인 피해는 이제 시작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올 여름은 예년보다 폭염일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며 이로 인한 탈진 및 열사병 등 더위로 인한 환자가 내원하고 있다"며 "택배나 건설업 등 실외 노동자들은 규칙적인 휴식과 수분 보충하는 등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노동자 보호 대책도 미비하다. 정부가 운영 중인 무더위 쉼터는 대부분 고령 실내 취약계층을 위한 공간으로, 이동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은 접근조차 쉽지 않다. 쉼터 위치 자체가 작업 공간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청소노동자 B씨는 "도로 위에서 일하다 보면 숨이 턱 막힐 정도지만, 쉬는 곳도 없고 시간 맞추려면 참고 해야 한다"며 "그늘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야외 이동노동자와 같은 폭염 취약계층이 정책에서 배제돼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두 시간 작업 후 20분 동안 휴식을 보장하는 제도 시행이 준비 중이었으나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불필요한 규제'라며 이를 철회했다. 더위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부족한 실정"이라며 "수 많은 실외 노동자가 폭염으로 목숨을 위협받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박진석 기자 ]

박진석 기자 kgsociet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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