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옛날을 뜻하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란 말이 있다. 담배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주술의식에서 사용하던 것을 유럽인들이 기호품화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15~6세기 대항해시대에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일본으로부터 전해졌다고 하니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그리 오래된 옛날은 아닌듯하다.
과거 담배는 고급의 기호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담뱃대의 길이로 신분을 구분하기도 했으며, 일제강점기와 해방의 시기를 넘어오면서는 청탁과 향응을 위한 선물용 물건으로 애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귀하신 몸이던 담배는 20세기 들어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매우 흔한 기호품이 되었다. 담배가 일부 힘 있는 권력자나 재력가들의 전유물처럼 향유되었던 시절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되었다.
담배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기호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흡연의 폐해에 대한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대한폐암학회 자료에 따르면 담배 연기에는 타르와 니코틴 외에 약 4000가지의 유해물질과 약 40가지의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 중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독극물인 다이옥신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흡연은 폐암과 만성폐쇄성폐질환의 원인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심장마비, 뇌졸중, 말초동맥질환 등을 포함한 심혈관계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나아가 담배의 주요성분인 니코틴은 습관성 중독을 일으키는 마약성 물질로 알려져 있는데, 일단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폐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약 6만여 명이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이는 대형 여객기 120대가 추락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의 재앙이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흡연자의 최대 50% 이상에서 사망원인이 담배로 확인되었으며, 흡연으로 매년 80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고 모든 형태의 담배는 유해하며 담배에서의 안전한 노출수준이라는 것은 없다’고 경고했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어르신께 담배를 선물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흡연의 폐해에 대한 과학적·통계적 증거를 접할 때마다 우리가 서로 독극물을 선물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흡연으로 인한 폐해는 개인적 건강의 문제를 넘어 공동체 사회에도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특히 흡연으로 야기된 각종 질병치료에 우리의 공적 자산인 건강보험료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은 2014년부터 흡연으로 인한 질병치료에 담배회사가 그 책임을 일부 부담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얼마 전 캐나다에서는 27년간 진행된 담배소송에서 우리 돈 약 33조에 해당하는 배상 판결이 났다고 하니 우리나라 담배소송에도 중요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보도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10명 중 9명은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며, 10명 중 6명은 ‘폐암환자의 의료비를 담배회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계와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미 흡연폐해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보편적 수준에 와 있는 것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그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는 우리사회에 건강보험도 없었으니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했을 것이고,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는 각종 질환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고통 속에서 사망하는 슬픈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을까?
시대를 거쳐 오며 담배는 주술용으로, 신분을 구분하는 상징으로, 때론 모험과 자유의 상징으로 이미지를 변신하며 그 심각한 중독성을 기반으로 우리사회에 깊이 뿌리내렸다. 동시에 담배제조 회사들에게는 개인의 건강을 담보로 거대한 부를 축적해 주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담배와 흡연은 더 이상 동화 속 신비로운 이야기도, 모험적이고 자유로운 낭만적 모습도 아닌 인간에게 무서운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물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흡연의 유해성과 중독성, 그리고 해외에서 입증된 배상사례를 바탕으로, 국가는 흡연을 더 이상 개인선택의 문제로 떠넘기지 말고 담배제조회사에게 엄중히 책임을 묻고 국민건강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 사정희 수원특례시의회 보건복지위 부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