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대거 참여했던 미국 ‘더 드루 라스베이거스 리조트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며 3000억 원대 손실이 발생한 가운데, 현대차증권이 투자자에게 9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투자상품의 핵심 리스크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대차증권의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부장판사 최욱진)는 최근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현대차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현대차증권이 손해액의 60%인 90억 654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해당 재단은 총 158억여 원을 투자해 이 중 151억 원 이상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은 투자설명 과정에서 ‘DIL(deed in lieu, 부동산 소유권 양도 제도)’ 조항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DIL은 선순위 채권자에게 부동산 소유권이 양도되면, 나머지 채권자에겐 상환 책임이 면제되는 조항으로, 중·후순위 투자자에게는 사실상 ‘원금 전액 손실’을 의미한다.
법원은 “현대차증권은 투자권유 과정에서 투자설명서만을 제공했을 뿐, 핵심적인 위험요소를 일반투자가인 재단 측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재단이 투자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막대한 손실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또한 “상환 리스크 등 일부 항목이 설명서에 언급돼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원금 손실 가능성, 해외 부동산 투자 위험성 등을 충분히 알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대차증권은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DIL 조항의 존재는 해당 펀드를 판매한 미래에셋증권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검토했으나, 사전에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차증권은 단순한 투자중개인이 아니라 자산운용을 일임받은 ‘관리자’로서 투자자 보호의무가 있었다는 점에서 책임이 더 무겁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국내 증권업계 전반에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프로젝트는 JW메리어트 호텔 유치와 함께 약 3조 원 규모의 복합리조트 개발로 주목받았고,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주관사로 나섰다. 당시 JP모건 등 글로벌 기관이 선순위로, 국내 기관이 중·후순위로 참여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시행사가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국내 투자자들은 전액 손실을 입었다.
현대차증권은 뒤늦게 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을 상대로 “위험요소를 숨겼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현대차증권은 전문투자자로서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위치였다”고 일축했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금 유치에만 몰두하고, 실질적인 위험설명은 뒷전이었던 구조적인 관행이 드러난 사례”라며 “이번 판결은 투자자 보호 원칙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증권과 정몽구 재단 측은 항소 가능성이 있어 최종 책임 여부는 2심 판결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만으로도 ‘투자권유 책임’에 대한 증권사들의 무거운 경고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